7.22.2013

Haircut


부끄러운 얘기지만 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를 만져주는 동안 나는 아직도 거울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어쨌든 고개는 반듯하게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꼿꼿이 앉은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한다. 원래 짧은 머리였는데 남은 머리보다 잘라낸 머리가 더 많을만큼 짧게 잘랐다. 헤어 디자이너께서는 특히 남자들과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거라면서 연신 우려를 표했다. 나는 엄마는 멀리 사시고 봐줄 만한 남자들도 없어서 괜찮다고 연신 안심을 주었다.

어제 오후 쇼에 W와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A와 C와 K과 모두 와주었다. 공연 후에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녹사평에 나갔는데 나는 2명 이상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티가 나게 어색했다. 그게 모두에게 불편함을 줬을까봐 좀 미안했다. 그들은 거의 3시간 동안 영화 얘기를 했는데 나 역시 화두에 오른 그 영화들을 대부분 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쯤이 내가 말할 차례인지, 언제 추임새를 맞추고, 무슨 말이 적당한 말인지 등을 재며 그들의 아담스 애플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잠자코만 앉아있는 나를 신경써주는 이들에게 "괜찮아. 내가 커뮤니케이션 감각을 좀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라고 필요이상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꽤나 질서있게 사는 듯 해도 결정적인 때 우선순위를 헷갈려버리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또 하나 불편했던 것은 어제 미용실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무슨 내용인지 중간에 놓쳐버리고 글자만 죽 따라 읽으면서 계속 책장을 넘기고 있는 본인을 발견했을 때. 여러번 그랬다. 그 때마다 느끼는 자기혐오 정도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혼자서도 잘해요가 아니라 혼자서만 잘한다(잘하는 줄 안다). 사람들과 섞이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내실의 발전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혼자 있는 건 너무 쉽다. 너무 쉬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주를 특히 잘 살아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비가 철철 내리네.

7.20.2013

The Master


그래서 지난 수요일 마스터를 봤는데 그것에 대해 별로 할말이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대충 느낌은 그렇다. 영화의 소재와 그냥 개인적 관심 영역이 멀어서인것. P. T. Anderson이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건 알겠다. Magnolia를 봤을 때의 충격도 어렴풋 기억나고 There Will Be Blood도 영화적으로 대단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는 건 누구든 알아볼 만 했다. Philip Seymour Hoffman과 Joaquin Phoenix의 소름끼치게 리얼한 연기가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본인을 계속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였지만 캐릭터들 자체가 관찰하기 좀 불편한 인물들이라 영화를 '즐기기'에는 좀 한계가 있었던 듯하다. 이건 내가 가벼운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전쟁 전에 각 캐릭터들이 원래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좀 더 보여주셨더라면 더 동조가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Tom Cruise가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9월에 Minneapolis에서 C. S. Lewis 컨퍼런스가 있는데 잘하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부터 고민하고 있는데 고작 4일 머무르겠다고 이틀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강행군에 그닥 자신은 없어 계속 맘이 바뀌고 있다. 일단 일터에는 얘기해 놓았는데 이 주내로 결정해야지.

Popcorn이 시작했다. 이번 주말과 다음주말 중 시간 되시는 분들 White Box Theatre로 오시라. 자막을 올리고 있을테니.

드디어 어제 몇 달간 들고 꼼지락 대던 David Foster Wallace의 The Broom of the System을 다 읽었다. 그러게 과연 Pynchonian, Joycean, Wittgensteinian이라는 형용사가 다 와서 붙을만 하다. (아 그런데 P. T. Anderson 감독의 다음 작품이 Pynchon의 Inherent Vice란다. 이런 포스트모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영화화하는 건 어쩐지 불안하다. David Cronenberg가 영화화한 DeLillo의 Cosmopolitan을 아직 안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거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어지는 여정의 모티브가 되시는 인물이 끝까지 나오지 않아 다소 실망이었다. 그, 목에 두꺼비를 달고 다니면서 다리를 저는 여자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 속 이야기'가 대단 슬프면서도 웃기는 게 있어 읽는 동안 계속 Infinite Jest에 대한 향수를 일으켰다.

그에 이어 작년 여름부터 계속 손에 쥐었다 놓았다하고 있는 The Magic Mountain을 다시 집어들었다. 표지가 지겨워서라도 이번엔 마지막 장을 읽으리라. 이런 쓸데없는 고집.일까.

비가 한참 오다가 이제 매미가 운다.

7.11.2013

Lately


유감인 것은 친구와 5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유감인 것은 그런 친구가 불러 나간 자리에서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별 감정없이, 어떤 흔들림이나 동요도 없이 앉아 있었음이다. 유감인 것은 하필이면 그 때 몸 상태가 별로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말의 여러가지 변형도 몇 시간 들어주지 못하고 빨리 자리를 떠야 했음이다. 유감인 것은 물론 남 얘기지만 그 남이 너무 멀리,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여겨졌음이다. 이것은 벌써 일주일 전 얘기이다. 

다행인것은 걸어다닐 수 있는거리에 씨지비 무비꼴라쥬가 생겼음이다. 벌써 이 달에 Dans la Maison, Un 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Poulet Aux Prunes를 다 보았다. 조만간 The Master와 A Late Quartet을 적당한 시간에 보려는 중이다. Dans La Maison은 오랜만의 프랑스아 오종 영화인데 실감이 나면서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꽤 있어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아니면 원래 그의 영화가 그랬던가. 그의 전작들의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 영화는 사운드 트랙이 정말 좋았고 Romain Duris의 살떨리게 리얼한 연기가 극점이었다. 결말이 좀 흐지부지해서 그렇지 나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평점이 좋진 않더라. 마지막 영화는 영화 4/5까지는 이게 뭔가 싶다가 모든게 말이 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이다. 참신했다.

Red Light Winter와 Popcorn의 번역을 끝냈다. 쉬는 날인 어제 집에 박혀 막바지 작업을 하다가 기똥찬 발견을 했는데 번역을 하는 동안에 쉽사리 피로해지지 않는 완벽한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침대를 가로질러, 누운 것에 가깝게 앉아 창문이 난 벽에 베게를 놓고 등을 기대어 맥북을 다리에 올려놓고 작업을 하다보면 전혀 피곤해지지도 않고 왼쪽 귀 뒤 열린 창 밖으로 빗소리도 들리는데다가 왜그런지 음악도 더 의식적으로 골라 들으며 작업할 수 있다. 차가운 음료를 침대 옆에 놓고 마시면서 자꾸 생겨 떨어지는 물방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도 연구해서 발견해냈다. 그렇게 어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기분이 꽤 괜찮아 저녁 즈음 이마트에 나가 그린 채소들과 고기와 해물, 여러 종류의 음료들과 요구르트를 잔뜩 사다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교촌 치킨을 시켜 먹었다. 

위의 자세는 정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완벽한 자세인데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이렇게 하루를 쓰면 전혀 에너지를 소비한게 없어 새벽 두 시가 다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도 한참동안 눈을 말똥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Esbjorn Svensson Trio 음반들을 다시 듣고 있는데 이 이상으로 더 음반이 없다는 게 새삼 너무 아쉽다. 누구 이 트리오랑 비슷한 뮤지션들 아시면 알려달라.

스타벅스 골드카드를 쓰다보면 꽤 자주 하나 더하기 하나 쿠폰이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애매해서 그냥 안쓰고 말았는데 어제부터는 하나 더하기 하나 쿠폰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가야지 쓸 수 있는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다른 한 개는 얼음을 빼고 포장해와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씨지비에서도 이런 쿠폰을 꽤나 자주 나눠주는데 이건 편견의 영역에서 풀 수 있는 숙제는 아니다. 연인들끼리 보는 스윗박스 석의 편견을 깨부수고 혼자 옆으로 누워서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이 오지 않는 이상. 영화관 얘기가 다시 나와서 말인데, 기존의 영화관 좌석과 다르게, 인간의 골격 구조를 고려했음이 틀림없는 아트레온 좌석의 편안함은 가히 기립 박수를 보낼만하다. 

슬슬 2009년인가에 구입한 초창기 아이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꿔야할 때가 오는지 실행 버튼을 세 번은 눌러줘야 말을 알아듣는다. 전화도 잘되고 포드캐스트도 잘 다운로드하고 음악도 잘나오고 정도 들어 변심하긴 좀 껄끄럽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답장하고 싶은 이메일이 하나 있는데 왠지 자꾸 미뤄지고 있다.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