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인 것은 친구와 5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유감인 것은 그런 친구가 불러 나간 자리에서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별 감정없이, 어떤 흔들림이나 동요도 없이 앉아 있었음이다. 유감인 것은 하필이면 그 때 몸 상태가 별로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말의 여러가지 변형도 몇 시간 들어주지 못하고 빨리 자리를 떠야 했음이다. 유감인 것은 물론 남 얘기지만 그 남이 너무 멀리,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여겨졌음이다. 이것은 벌써 일주일 전 얘기이다.
다행인것은 걸어다닐 수 있는거리에 씨지비 무비꼴라쥬가 생겼음이다. 벌써 이 달에 Dans la Maison, Un 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Poulet Aux Prunes를 다 보았다. 조만간 The Master와 A Late Quartet을 적당한 시간에 보려는 중이다. Dans La Maison은 오랜만의 프랑스아 오종 영화인데 실감이 나면서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꽤 있어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아니면 원래 그의 영화가 그랬던가. 그의 전작들의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 영화는 사운드 트랙이 정말 좋았고 Romain Duris의 살떨리게 리얼한 연기가 극점이었다. 결말이 좀 흐지부지해서 그렇지 나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평점이 좋진 않더라. 마지막 영화는 영화 4/5까지는 이게 뭔가 싶다가 모든게 말이 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이다. 참신했다.
Red Light Winter와 Popcorn의 번역을 끝냈다. 쉬는 날인 어제 집에 박혀 막바지 작업을 하다가 기똥찬 발견을 했는데 번역을 하는 동안에 쉽사리 피로해지지 않는 완벽한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침대를 가로질러, 누운 것에 가깝게 앉아 창문이 난 벽에 베게를 놓고 등을 기대어 맥북을 다리에 올려놓고 작업을 하다보면 전혀 피곤해지지도 않고 왼쪽 귀 뒤 열린 창 밖으로 빗소리도 들리는데다가 왜그런지 음악도 더 의식적으로 골라 들으며 작업할 수 있다. 차가운 음료를 침대 옆에 놓고 마시면서 자꾸 생겨 떨어지는 물방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도 연구해서 발견해냈다. 그렇게 어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기분이 꽤 괜찮아 저녁 즈음 이마트에 나가 그린 채소들과 고기와 해물, 여러 종류의 음료들과 요구르트를 잔뜩 사다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교촌 치킨을 시켜 먹었다.
위의 자세는 정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완벽한 자세인데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이렇게 하루를 쓰면 전혀 에너지를 소비한게 없어 새벽 두 시가 다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도 한참동안 눈을 말똥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Esbjorn Svensson Trio 음반들을 다시 듣고 있는데 이 이상으로 더 음반이 없다는 게 새삼 너무 아쉽다. 누구 이 트리오랑 비슷한 뮤지션들 아시면 알려달라.
스타벅스 골드카드를 쓰다보면 꽤 자주 하나 더하기 하나 쿠폰이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애매해서 그냥 안쓰고 말았는데 어제부터는 하나 더하기 하나 쿠폰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가야지 쓸 수 있는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다른 한 개는 얼음을 빼고 포장해와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씨지비에서도 이런 쿠폰을 꽤나 자주 나눠주는데 이건 편견의 영역에서 풀 수 있는 숙제는 아니다. 연인들끼리 보는 스윗박스 석의 편견을 깨부수고 혼자 옆으로 누워서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이 오지 않는 이상. 영화관 얘기가 다시 나와서 말인데, 기존의 영화관 좌석과 다르게, 인간의 골격 구조를 고려했음이 틀림없는 아트레온 좌석의 편안함은 가히 기립 박수를 보낼만하다.
슬슬 2009년인가에 구입한 초창기 아이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꿔야할 때가 오는지 실행 버튼을 세 번은 눌러줘야 말을 알아듣는다. 전화도 잘되고 포드캐스트도 잘 다운로드하고 음악도 잘나오고 정도 들어 변심하긴 좀 껄끄럽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답장하고 싶은 이메일이 하나 있는데 왠지 자꾸 미뤄지고 있다.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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