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2012

Books and Movies

I am this woman's soul.


























What I've read this month:

- The Golden Bowl by Henry James
- Tristan by Thomas Mann (translated by David Luke)
- Bartleby the Scrivener by Herman Melville (Audio)
- Tonio Kröger by Thomas Mann (translated by David Luke)
- The Paris Review #199
- Persuasion by Jane Austen (Audio)
- Le Nouveau Testament: Actes des Apôtres, Lettre aux Romains (Parole de Vie)
- The Adventures of Sally by P. G. Wodehouse (Audio)
-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by Bertrand Russell
- A Christmas Carol by Charles Dickens (Audio)
- The Man Who Loved Islands by D. W Lawrence
-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by Johann Wolfgang von Goethe (translated by R. Dillon Boylan; Audio)


Movies I've watched this month:

- 無用 (2007)
- The Quiet (2005)
- Gran Torino (2008)
- Don Giovanni (1979)


*
Esther: You've read quite a lot this month.
Esther: Yea, guess I have.
Esther: But what does that mean?
Esther: Nothing. Nothing other than just that I've read those.
Esther: Anything suggestive?
Esther: No. Let's not go there.
Esther: ... You're a fool.
Esther: I agree.

5.30.2012

not fitting in

Le Pont de Courbevoie
Georges Seurat

한 페이지에 포스트 한 개만 보이게끔 디폴트를 해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페이지에 일주일치씩만 보이게 하더라도 이건 심각한 정신분열, 다중인격, 질풍노도의 연속이다. 어쩌다가 한 달간의 포스트를 한페이지로 보게 되는데 그 때의 우스꽝스러움이란. 심심하면 해보시고 실컷 비웃으시라.

그 분이 또 오셨다. 모든게 피곤하고 지치고 슬프고 의미없다. 나는 영 맞질 않는다. 어디에도 맞질 않는다. 그대로 아무렇게나 길에 누워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아무에게나 다 줘버리고 싶은 자의식은 꼿꼿하기만 하다.

모든 걸 손 놓아버리게 될 때 응대불가하게 슬프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 볼, 의도하지 않게 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가 계속 이대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가고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질문이 있다면, 이 삶도, 이 세상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뭣에든 열심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뭐 하나에 집중을 하고 어떻게 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 개인의 자유가 당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어제 일곱시간이나 잤는데 이러니 분하다. 그것에 대해 분한 것도 슬프고 지치고 의미없다. 

5.29.2012

I celebrate your romance

Spring Breeze
Igor Grabar

여자친구가 일을 관두고 세계 여행을 나간 다음부터 주말마다 심심해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게 멀리서도 느껴지게 하는 롯데가,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그녀를 찾아 인도에 간단다. 아무렴 그래야지. 

가는 김에 화려하진 않지만 왠지 의미있어 보일 것 같은 심플한 반지를 채워주고 오라고 했다. 정작 내가 제안하면서, 상상만해도(상상이라서) 낭만적인 장면이라 내가 막 베시시한다. 전 우주적인 관점 같은, 가장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단 하나 뿐인 그녀를 찾아 대륙을 건너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나는 남자. 그리고나서 오랜만에 같이 보내는 며칠 밤낮동안 뭐 매 순간이 유리알처럼 빛나고 황홀하겠냐만. 남자가 다시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저녁 호주머니를 뒤적뒤적하며 부끄럽게 꺼내드는, 작고 조용하게 반짝이는 것이 박힌 소박한 반지. 캬!! 괜춘해 응? 대사는, 음. "그냥. 주고 싶었어." 캬! 얼굴은 빨개져도 되는데 뒤통수는 긁지마. 완-전 클리쉐지만 클리쉐가 괜히 클리쉐가 되는 게 아니야. 

그러겠노라며 반지를 골라달라는 롯데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왜 막 떨려. 흐흐.

오랜만에 이 곡으로 건반을 만졌다: Schubert Impromptu in G flat major D899 No.3



played by Horowitz

5.28.2012

i wonder what it's like to be a mother


나는 오늘 까페에 나가 적당한 빛을 쐬며 여유롭게 책이나 읽을 요량이었으나 어떤 부탁으로, 한 선생님께 왜 아이가 과제를 끝까지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설명하는 학부모의 장문의 편지를 엄마의 마음으로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오후내 했다.

나는 전에 딸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해보려고 애쓰며 입학원서에 필요한 장문의 학부모 에세이를 써본 적도 있고, 열 살 남짓이지만 어쨌든 총명한 아이의 마음을 가늠해 보며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도 있고, 비슷한 마음으로 학교 과제 에세이를 종종 고쳤다. (이렇게 남의 신발을 잘도 신어보는데 왜 그 밖의 크리에이티브하지만 진짜 같은 스토리는 당최 만들지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걸 미리 다 해봤으니 능숙한 엄마가 될까는 모르겠으나 보통 초 중 고 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들이, 특히 그 자녀가 똑똑하고, 칭찬과 박수를 많이 받고 있을수록 더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어떤 것에 둔해지는 경향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것은 스스로의 조심성으로 가장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에, 자녀가 별로 똑똑하지 않은 것 같고 들리는 칭찬도 박수도 뜸하면, 다른 종류의 긴장이 필요하겠으나.  

여하튼 엄마로서 속상할 수 있을 일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엄마가 아니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시시한 것들이 일단 엄마가 된 이상, 가능성이 되고 걱정이 되고 슬픔이 되고 아픔이 되고 실망이 되어 밀려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좀 지혜로워져서 가끔은 쿨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겠으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겨우 세 시간씩에 걸쳐 완성했다는 흉내낸 그림들도, 자식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식같다며 얼마나 남주기 아까워하는데, 열 달 간의 집중과 관심, 내 몸이 전에 없이 불룩해짐과 내가 먹고 듣고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 심지어 내가 어떠하게 생긴 것!까지 직접적으로 연관된, 어떤 살아있는 것이 나타나 걸음을 뗄 때, 그 땐 내 마음이 어떻게 울렁거리게 될지에 대해서는 영 자신이 없다. 

작업을 하는 동안 옆에 어떤 커플이 앉아 있더랬다. 각자 곱게 차려입고 나와 내가 거실처럼 여기는 이 까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쪽 손을 꼭 붙들고 앉아 다운로드 받아온 티비 쇼프로그램을 보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에, 한 손씩 박장대소. 나는 하루 빨리 그들이 순조롭게 살림을 합쳐서 티비던 티비를 담아온 노트북이던 그런 건 그들의 안방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준다. 괜한 심술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모든 종류의 포기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이를테면 손해를 보겠다고 미리 마음먹는 건데 이게 잘 될 수록 고맙고 감사한 것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이런 자세에는 겉멋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멋이 있다. 내가 이래서 지져스가 좋다.

스피킹 오브 지져스, 어제부터 알게된 멋진 사람, Matt Chandler. 특히 이 클립 중 욥기를 읽어주는  부분에서 나는 알고 있던 구절인데도 전에 읽어본 적 없는 것처럼 두렵고 떨렸다. 또 바울이 얼마나 자유로운 인간인지를 얘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인물인데도 전에 들어본 적 없는 것처럼 연신 실실대고 있었다.




Indeed, this guy is beautiful and his words are powerful. But what's even more beautiful and powerful is to know where all that beauty and power came from. To know it and thereby to love it, to desire it more.

     

5.27.2012

Answer Me, My Love



Keith Jarrett Live 2011


오늘 본 어떤 영상: 다른 연고 없이 할아버지(88)와 함께 살고 계시는 할머니(83)께 뭐하며 지내시냐고 물어본다.

"그냥 청소도 하고, 밖에 나가 서있고 그러지 뭐"
"밖에는 왜 나가 서 계세요?"
할머니는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웃는 눈으로,
"사람이 보구싶으니께 그러지"

나는 여든까지 살아보진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기라도 한다는 듯 목이 메였다. 나는 각자 혼자서도 생활에 별 지장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은거나, 전에 본 적 없는 할머니가 사람이 보고 싶어 밖에 나가 서 계신다는 것을 보며 목이 엉기는 것 같은 자체가 이미 적자 생존 원리는 엉터리라고 알려주는 자연 현상이라고 본다. 이런 것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꽤나 불편한 현상이므로, 경제나 하고 효율이나 올리고 '힘' 깨나 쓰려고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 내 해석이다. 악착같이 우리네 이해력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이름 달아 정돈하고 결론 지으려는 거만한 집착은 '마비'나 '고립'의 정의에 더 가깝다. 잘 모르겠거나 확실하지 않으면 닫기 보다는 열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알 게 되는 수가 있다.  

Being alone makes us stronger. That's the honest truth. But it's cold comfort, since even if I wanted company no one will come near me anymore. 라고 방금 읽던 데에서 Lisandro는 말한다. 그래가지고 나는 문득 밤인사가 하고 싶어졌다:

내일은 휴일이니 마음이 어떻게 참 좋아요. 비도 막 내리겠다 자기 전에 이런 음악 괜춘해요. 그럼, Good night to you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