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2012

i wonder what it's like to be a mother


나는 오늘 까페에 나가 적당한 빛을 쐬며 여유롭게 책이나 읽을 요량이었으나 어떤 부탁으로, 한 선생님께 왜 아이가 과제를 끝까지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설명하는 학부모의 장문의 편지를 엄마의 마음으로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오후내 했다.

나는 전에 딸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해보려고 애쓰며 입학원서에 필요한 장문의 학부모 에세이를 써본 적도 있고, 열 살 남짓이지만 어쨌든 총명한 아이의 마음을 가늠해 보며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도 있고, 비슷한 마음으로 학교 과제 에세이를 종종 고쳤다. (이렇게 남의 신발을 잘도 신어보는데 왜 그 밖의 크리에이티브하지만 진짜 같은 스토리는 당최 만들지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걸 미리 다 해봤으니 능숙한 엄마가 될까는 모르겠으나 보통 초 중 고 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들이, 특히 그 자녀가 똑똑하고, 칭찬과 박수를 많이 받고 있을수록 더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어떤 것에 둔해지는 경향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것은 스스로의 조심성으로 가장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에, 자녀가 별로 똑똑하지 않은 것 같고 들리는 칭찬도 박수도 뜸하면, 다른 종류의 긴장이 필요하겠으나.  

여하튼 엄마로서 속상할 수 있을 일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엄마가 아니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시시한 것들이 일단 엄마가 된 이상, 가능성이 되고 걱정이 되고 슬픔이 되고 아픔이 되고 실망이 되어 밀려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좀 지혜로워져서 가끔은 쿨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겠으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겨우 세 시간씩에 걸쳐 완성했다는 흉내낸 그림들도, 자식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식같다며 얼마나 남주기 아까워하는데, 열 달 간의 집중과 관심, 내 몸이 전에 없이 불룩해짐과 내가 먹고 듣고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 심지어 내가 어떠하게 생긴 것!까지 직접적으로 연관된, 어떤 살아있는 것이 나타나 걸음을 뗄 때, 그 땐 내 마음이 어떻게 울렁거리게 될지에 대해서는 영 자신이 없다. 

작업을 하는 동안 옆에 어떤 커플이 앉아 있더랬다. 각자 곱게 차려입고 나와 내가 거실처럼 여기는 이 까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쪽 손을 꼭 붙들고 앉아 다운로드 받아온 티비 쇼프로그램을 보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에, 한 손씩 박장대소. 나는 하루 빨리 그들이 순조롭게 살림을 합쳐서 티비던 티비를 담아온 노트북이던 그런 건 그들의 안방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준다. 괜한 심술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모든 종류의 포기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이를테면 손해를 보겠다고 미리 마음먹는 건데 이게 잘 될 수록 고맙고 감사한 것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이런 자세에는 겉멋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멋이 있다. 내가 이래서 지져스가 좋다.

스피킹 오브 지져스, 어제부터 알게된 멋진 사람, Matt Chandler. 특히 이 클립 중 욥기를 읽어주는  부분에서 나는 알고 있던 구절인데도 전에 읽어본 적 없는 것처럼 두렵고 떨렸다. 또 바울이 얼마나 자유로운 인간인지를 얘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인물인데도 전에 들어본 적 없는 것처럼 연신 실실대고 있었다.




Indeed, this guy is beautiful and his words are powerful. But what's even more beautiful and powerful is to know where all that beauty and power came from. To know it and thereby to love it, to desire it more.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