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2012

the acacia tree revisited



저녁을 한껏 먹고 배를 두들기고 앉아, '피곤하고 배부른데 이제 그만 잘까', 하는 여자와 엊그제 반한 아카시아 나무를 보게 해주면 돌아와서 바로 재워주겠다는 협상을 하고는 대충 옷을 걸치게하고 자전거를 끌었다. 남 얘기 같지 않은 스크루지 얘기를 들으면서 이 십분 정도 굴려 엊그제 반한 아카시아 나무 앞에 멈춰섰다.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다. 숨을 참았다가 공중에 코를 킁킁대도 아무것도 맡아지질 않았다. 바람이 세고 나는 추웠기 때문이다. 

처진 어깨로 왔던 길을 되돌아 굴리면서 그러게 옷을 제대로 걸쳐줬어야지, 이게 뭐냐, 춥다 추워, 기침도 막 나와, 잠이나 잘 걸 그러지 않았냐고 여자는 속으로 내내 궁시렁댄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면서도 어쩌고저쩌고하고 있는 여자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건너편 건물 계단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어떤 엄마와 아빠와 아들이다. 엄마가 술래다. 뒤돌아 눈감고 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다고 할 동안 아빠와 아들이 꽃게처럼 샤샤샥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양이 너무 재미있어 여자는 궁시렁은 잊어버리고 쿡쿡대고 있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뒤돌아있는 술래 엄마에게 재빨리 샤샤샥 다가가 등을 찜하고 까르르르르르르 냅다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것을 상상하면서 짓궂게 씨익 웃다가 나는 서른 두 살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자못 진지하게 자전거를 굴려 얌전하게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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