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2012

I don't understand my body


나는 평소에도 여러 의미에서 내가 이해가 안가는데 오늘은 특히 내 몸이 이해가 안간다. 별로 수고하고 있는 게 없음에도 밤 열 시만 되면, 빨리 눕자, 눕자, 당장 누워야 돼, 하는게 이제는 전혀 귀염성이 없어졌다. 어제 저녁에는 그렇게 잘 먹여놓고 바로 침대로 보내줬음에도 오늘 아침 기운을 못차려서, 좋은 의도로 조물락조물락 어제 저녁만큼 먹을 걸 만들어서 한껏 먹여 준 다음 또 다시 친절하게 침대에 눕혀줬던 것이다.

해가 중천에 있을 즈음에야 겨우 눈곱 뗀 얼굴을 하고, 어젯밤 자기 전에 생각할 땐 오늘 오전동안 후딱 놀아나고 말 줄 알았던 캔버스를 삐딱하게 내려놓았다. 최근 내려받은 Goethe의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 캔버스를 거의 대충 채웠다. 토론토에 있는 어떤 목소리 좋은 남자가 읽어주는데, 나는 책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았기 때문에 미리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삼분의 일 정도 되었을까싶은 데 부터 계속 이 목소리 좋은 남자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막 울먹울먹하는데, 나도 막 색은 칠하겠는데 그 밖에 남은 대부분의 마음으로는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몰랐다.

마지막 챕터를 들을 즈음 거의 다 칠해놓고 나니 저 앉아있는 여자가 막 Charlotte 같다. 아름답고 혼란스러운 샤를롯. 혼자 턱을 괴고 앉아있는 샤를롯. 아무렇게나 벗어놓았어야 하는 신발을 빼놓고 안그려넣었네. 나중에 하자.

그러게. 나도, 이게 계속되는 사랑이 아니면 죽어야지, 하는 때가 없었다고 못한다. 너무 티나게 인텐스하고 진지한게 싫어 (혹은 싫다고 해서) 어느 땐가 부터 스스로 바깥 물을 조금씩 타 묽게 하는 요령을 익혔는데 그러다보니 지금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이것 역시 좀 별로다.

미완이지만 책도 끝났겠다, 원래 대충 그려야 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겠다, 싶어 이쯤하고 이름을 쓰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핑핑 돌았다. 어지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머리의 모든 혈관들이 쿵덕쿵덕하는게 느껴지고 그림의 색들과, 앉아있는 여자와, 울먹울먹하는 토론토의 남자와 죽어버리는 베르테르가 뒤죽박죽 엉켜버려, 내가 어디에 살고 지금껏 얼마나 살았고 왜 계속 살고 있는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졌다.

곧 이해가 안가는 내 몸이 얼렁뚱땅 말했다: 서현에 있는 뚜레쥬르에 가서 이분의 일 건포도 빵을 사와. 서현동 뚜레쥬르가 우리 동네 뚜레쥬르보다 맛있는 건 사실이지만 머리가 이렇게 흔들리는 판국에 굳이 거기까지 갈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침 머리가 잘 작동하지 않으니까 이해가 안가는 내 몸은 지가 원하는 대로 한다. (식욕이 신체적 고통을 줄이려는 욕구보다 더 힘이 센가?) 마침 가는 길에 이어폰에 랜덤하게 걸린게 Schoenberg라서 상황은 더욱 비논리적이고 어쩐지 초현실적이 된다.

원하는 빵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이해가 안가는 내 몸은 힘들다며 쉬었다 가잔다. 귀족적인 아이스드 케냐를 꼭 드셔야 겠다고 해서 친절하게 대접하고 이층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가 이제 됐으니 가자고 해서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 공원에서 고딩들이 고데기로 시간 좀 들였을 머리를 하고 하의 실종인 채로 데이트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오늘 아무거나 꺼내다보니 입게된, 다 늘어나서 속옷 색이 보일까말까한 민무늬 흰색 티셔츠가 좋다. 찾을 수만 있으면 이런 것 세 개쯤 더 사서 십년은 더 입고 싶다.

집에 와서 엄마표 딸기잼과 브리 치즈, 발사믹을 곁들여 이분의 일 건포도 빵을 먹다가 야채를 얹어 에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Gerard Manley Hopkins의 God's Grandeur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었다. 반복되는 'o' 소리와 't' 소리와 'f' 소리와 's' 소리와 'b' 소리와 'w' 소리가 좋았다. 참 맞는 말을 하고 있어 두 번 더 읽었다:


The world is charged with the grandeur of God.
It will flame out, like shining from shook foil;
It gathers to a greatness, like the ooze of oil   
Crushed. Why do men then now not reck his rod?
Generations have trod, have trod, have trod;
And all is seared with trade; bleared, smeared with toil;
And wears man's smudge and shares man's smell: the soil
Is bare now, nor can foot feel, being shod.

And for all this, nature is never spent;
There lives the dearest freshness deep down things;
And though the last lights off the black West went
Oh, morning, at the brown brink eastward, springs -
Because the Holy Ghost over the bent
World broods with warm breast and with ah! bright wings.





Brahms intermezzo Op. 119 No. 1 in B minor
played by Sviatoslav Richte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