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2012

a scene



나는 오늘 점심 때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을 한 몸에 받았다. 다 크고도 십 오년 쯤 더 보낸 여자가 꽤 높은 문턱에서 내려오다가 제 발에 걸려, 3초간 허공을 아치형으로 날아 시멘트 바닥에 두 무릎과 두 손바닥으로 착지한 것.

균형을 잃으면서 허공에 뜬 순간 열명 남짓의 "꺅!"하는 여자들의 단마디 비명( "어맛!"과 "꺅!" 사이에는 목격되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에 심심찮은 차이가 있으리라 여겨진다)과 대여섯 명 남짓의 "어이쿠!"하는 흰 와이셔츠 남자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부터 "어?" 소리도 내지 않은 것 같은 나는 공중에 떠 있으면서도 그 소리들과 내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쿵!하면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이윽고 아까 그 "꺅"과 "어이쿠", 그리고 내가 그러고 엎어져 있음의 상관 관계가 믿어짐과 동시에, 아프다, 창피하다, 어떡하지, 울까, 아프다, 창피하다, 어떡하지, 울까가 빛의 속도로 연속 세 번쯤 지나간 다음에도 나는 그대로 좀 엎어져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한숨을 푹 쉰 다음 ('또야?') 털지도 않고 걸었다. 나는 아프면서 아프지 않은 척 하기도 싫고 창피하면서 창피하지 않은 척 하기도 싫었는데 그렇다고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너무너무 아프고 창피해요!!" 할 수도 없어, 뭐 어떻게 그 다음을 있어야 할지 모르고 헷갈리는 표정으로 그저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돌아왔음직하다. 헷갈리게 돌아오면서도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이 파프리카처럼 빨개진 것이 느껴졌다. 

금요일이라 스커트가 아니라 청바지를 입어서 다행이었지만 분명 두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을 거라고 각오하고, 입술을 깨물며 바지를 걷어올리니 거짓말처럼 멀쩡하다. 생각해보니 바닥에서 밀리면서 멈춘게 아니라, 무슨,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것처럼..에, 어, 떨어졌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보면 두 무릎에 시퍼런 멍이나 들어있을지 싶다, 했는데 밤이 되면서 충격을 받았던 발목, 손목, 뒷목, 어깻죽지, 무릎이 점점 아파온다. 

어쨌든 훌륭하다. '꽈당'과 '쿵'의 차이. 허공에 떠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균형을 잡으려고 몸부림을 쳤으면 그렇게 정확히 네 군데의 좁은 무게 중심으로 떨어지는가. 정확히 두 손바닥과 두 무릎으로 무차별한 중력을 이겨내다니. 므하하. 아플만도 하지. 

그건 그렇고 나는 오늘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책 읽으며 가다가 쫌 잘생긴 사람이 옆에 서있는 것을 힐끗 보고 같은 문장 여러 번 읽게 됐다. 크흐흐. 웃기다.

내일 오전에 살 것들: 립밤, 캔버스, 파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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