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2013

Dear Reader,

from Kinfolk

조악하게 풀어놓은 저의 일상과 두서없는 소리에 공감해주시고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하루의 기록을 조금씩 남기고 있으나 아마 당분간 이 곳은 뜸할 것 같습니다. 다른 공간이 생겼고, 손에 잡히는 하루의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은 관계로 한 곳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이곳은 가끔씩 기억하고 찾아오겠습니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이렇게 무한반복으로 들을만한 좋은 음악을 발견했을 때 말이지요.

Tony Paeleman_Landscape



11.12.2013

ode to lemon ginger tea

photo by Brian Ferry

지금 당장 이마트에 가시면 각종 차와 커피, 코코아 등등이 있는 코너에, D 회사에서 나온 "아가베레몬생강차"라고 써있는 조그만 병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호주머니에 칠천원 정도 갖고 계시다면 겨우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두 잔정도 포기하시고 이것을 사십시오. 이 병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집에 돌아와 차 포트에 물을 올려놓으십시오. 커터로 비닐 껍질을 벗기고, 뚜껑을 잘 열어 보십시오. 잘 안되면 고무장갑을 끼고 차분히 시도해 보십시오. 펑 소리는 나지 않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머그잔을 꺼내 다섯 티스푼 정도 내용물을 덜어내십시오. 물이 다 끓었으면 머그잔에 알맞게 따라내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천천히 잘 저어주십시오. 10초 정도, 서두르지 않게 뜸을 들이고 이제 호- 불면서 그 맛을 음미해보십시오.
...
여기까지 하셨으면
당신은 제가 괜찮은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 기호에 따라 주변에 주황색 불빛의 미니 전기스토브, 혹은 초를 켜놓거나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아직 읽지않은 단편 소설이나, 좋아하는 화풍의 그림책, 어느 때 들어도 잘 질리지 않는 음악과 곁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 만약 이걸 오늘 저녁 즈음에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러시는 중에 제가 숨쉬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시 마포구 쪽을 향해 긍정의 끄덕임을 한 번 해주십시오. 제가 이런 걸 널리 알려드릴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제가 쭉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아도,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드리는 것보다 아무쪼록 더 영양가있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도록 애써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입니다.      

11.11.2013

learn to take it day by day

photo by Marcus Møller Bitsch 

씨리얼을 후루룩 마시듯 한 다음, 크고 빨간 사과를 먹으면서 Alice Munro의 단편을 하나 읽다가 다시 졸음이 와 스르륵 또 누워자다 일어나 보니 열한시가 좀 넘었다. 올해 1월 그녀의 Dear Life를 번역해 보겠다고, 문학한다는 출판사 다섯 군데에 관심이 있으실지 물어봤었다. 그녀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거나 출판 계획들이 밀려있어 당분간은 새로운 번역작은 의뢰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그녀의 노벨상 수상 후로 어디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을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물어봤던 출판사들 중 하나가 다음 달 출판한다고 예약 판매하고 있더라. 예약 판매라니. 뭐 그리들 서두르시는가. 번역을 맡은 누구씨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급히 하느라 정신 없으시리라. 그 출판사 에디터님께서는 올해초 본인과 그런 이메일이 오고간 내용을 기억하지도 못하시겠지. 

지난 주 금요일엔 수업 15분 전 갑자기 뷁하고 변덕인지 영감인지 모르는게 오셔서, 아이들과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간추린 버전의 Moby-Dick과 The Lord of the Flies를 두 시간에 걸쳐 읽었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서 기뻤다. 그런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자유가 도처에 널려있다.  

11.08.2013

x-ray

John Register

두 달간 미뤄왔던 <정형외과 가서 손가락 엑스레이 찍기>를 드디어 해내었다.

나는 타인의 기대에 열심히 부응해보고자 그들끼리 지칭하는 <회식>자리에 따라나선 것이었다. 그러다 그 중 한 분이 고기는 잘 안드시고, 물 같이 생긴 작은 잔을 연거푸 들어마셔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버린 것처럼 되버리고 만 상황이었다. 화장실에 가겠다는 그녀가 어쩐지 위태위태해보여 같이 일어났는데, 그녀는 예상대로 목적지를 향해 가지질 않고 비틀비틀 차도쪽으로 비껴나갔다. 나는 몸의 방향을 바꿔주려던 의도였을 뿐이고 그녀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었을 뿐이겠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나를 살짝 밀쳤을 뿐이었을 텐데 하필이면 그녀의 몸집이 나보다 컸던 터라, 이 몸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아스팔트 도로 위를 살짝 날다시피했지만 실제로 날지는 못해 오른 쪽 무릎과 오른 손가락 들을 중심으로 대충 팽개쳐진 것이었다.

무릎에서 피를 많이 흘렸고 딱지가 완전히 앉고 떼어지는 데 6주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검보라색 흉터가 생겼다. 오른 손가락 3,4,5번이 삐그덕대며, 통증인지 불편한건지 분간이 애매한 아릿아릿함이 그간 계속 있어왔다. 그렇지만 심하게 붓거나 했던 것도 아니니 뼈가 부러진 건 아닌 것 같다는 판단 하에 병원에 가는 걸 계속 미뤄왔다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며 느껴진 첫 감각이, <손가락이 아프다>는 거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부지런을 떨어 밖에 나가 병원으로 걸었다.

<큰 이상은 없고 그냥 삔 것>이 의사 선생님의 총평이다.

내가 넘어져서. 상처가 나서. 흉터가 남아서. 손가락이 삐그덕거려서. 이 사건에 얽힌 그녀가 <기억에 남을만한 인물>이 된 것도 틀리진 않지만. 그런 것 보다 더 깊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박힌 건, 그 모든 게 일어나기 2분 전, 고기를 구우면서 원치않게 들었던 <말>들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들어버려서 내딴의, 이웃을 둥글게 사랑하고 싶은 노력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싫었다. 어디 뭐든 내 맘 편해지라고 바깥 일이 그렇게 되는가 말이다. 들이마시면 취하게 되있고 나온 말은 이미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 어떤 식으로든 소화되어 삼켜지게 되어있다. 나는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멀쩡히 듣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그것이 쌍방향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 유감이다.

요는, 타인의 기대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니 부응하고자 하는 기대는 스스로 선택해야겠다는, 그런, 또 들으면 당연한 얘기입니다. <아니오>의 섭섭함을 안겨주는 불편함은 찰나이고 흉터는 왠만하면 오래간다는, 그런, 또 뻔하지만 맞는 것 같은 얘기지요.

11.07.2013

sung words/ linguistic music



What do fireflies sound like?
: "*"
완벽한 침묵을 배경으로. 정확히 말이라고 할 순 없는 언어적 소리,
음악같은 말, 심상 이미지를 외부로 전달하기 위한 음성적 노력, 음악적 제스쳐.
알고보면 이다지도 경계가 모호한 신기한 말 음악 이미지 놀이. 시간하고 놀아나기.

All in the flow. Omissions are not accidental.

Radiolab은 C가 K에게 강제 추천하고 이어서 K가 내게 적극 추천해준 포드캐스트인데 컨텐츠도 그렇지만 말과 그밖의 소리들이 빚어내는 향연에 나도 덩달아 팬이 된지 꽤 되었다. 그렇지만 K와 소원해진지는 세 달 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이렇게 저렇게 뭐를 하기엔 좀 그런 것들 중에 하나다.

mrkrgnao.

11.06.2013

creative principle

John Register

There's no such thing as bad light.
It's all good.


11.05.2013

on repetition

by Trevor Triano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때로는 여러가지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뻔한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저의 생활입니다.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에 큰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가끔은 속박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괴롭히기도 하지만, 해가 갈 수록 이런 현실 생활은 그럴만 하다, 말이 된다,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게 포장하면 두 발을 땅에 똑바로 딛고, 어떻게, 어느 지점에서 타협할 것인가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오전에 이렇게 침대에 가로로 눕듯 앉아,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을 모두 들춰보며 하루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는 정말 괜찮습니다. 이건 생활에 대처하는 나름의 자세에 영감을 주고, 매일 똑같은 듯 하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일터에서의 시간에도 미리 생산자와 사회인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퇴근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주황 불빛의 조용한 시간을 기대하게 합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수 있으나, 어쨌든 통제와 안정, 혹은 현상유지에의 강박적인 추구에서 벗어나, 되도록 다른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어디로부터 벗어나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에는 또 차이가 있습니다.  from 과 to 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범위의 차이기도 합니다. 끝을 미리 인지 하는데에서 오는 나태함과 무기력, 포기를 연상시키는 최면같은 반복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급진적 집념과 불굴에의 반복은 하기에 따라 멋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건 그렇고 어제 저녁 정자동 마드모아젤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는데 알고보니 그녀의 웨딩 때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예식장 측의 멋진 현악 3중주와 그에 딸린 피아니스트에게 부탁했다는. 그래가지고. 부탁에 응하기 전 망설임과 지난 몇 주간 선곡한 곡들에 대한 연습은 별 소용이 없게 됐으나 전 우주적으로 볼 때 더 잘된 일이겠거니 싶다. 그녀의 말 그대로에 철썩 순종하여 '맘 편하게' 앉아 축하하고 올테다. 끄덕.

11.04.2013

november



나는 마시는 차 말고 굴러다니는 차 같은 거에는 영 관심이 없지만 올 9, 10월에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났던 꼬맹이의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저런 미니 모형들을 몇 백개를 수집했던 모양인데, 꼬맹이의 관심사에 내가 약간의 관심을 보이며 조금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자랑하듯 모형을 늘어놓으며 그 자동차들의 이름과 년도와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려주었었다. "쌈바"라고 불리는 듯한 저 버스 비스무리하게 생긴 자동차가 귀엽다고 하자 서슴없이 가지라고 내주었다. 그 뒤로 몇 번 만날때마다 저렇게 조금씩 주어 늘어나게 되었다. 어쨌거나 꼬맹이가 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가 애초에 만났던 목적 비슷한 걸 이루게 되어 다행이지만 무엇보다 꼬맹이가 그 순수한 열정을 오래도록 변함없이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6, 7, 8월 즈음 그런 꼬맹이들 둘을 더 만났었고 내가 도움이 됐으면 얼마나 됐겠느냐마는 모두 총명한 아이들이었던 터라 속 시원히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은 고작해야 열 셋, 열 넷인데 십 년 후 이들 앞에 펼쳐질 세상을 나는 지금 가늠해 볼 수도 없다. 나의 십 년 후, 40대의 내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없는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의 예측불가함이다.

11월인데, 어쩐지 벌써 올해가 마감되는 기분이다. 여러 상황적으로. 엊그제 나는 공식적으로는 올해에 있을 모든 번역 작업을 끝냈다. 세어보니 올해 모두 9작품을 번역했고 16개의 단막극을 번역했다. 아쉽게도 올 해 원하는 만큼 원하는 책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었지만 다다음 주 즈음이면 믿거나 말거나, 딱히 재밌다고 할 수 없는 문제들로 빽뺵한 수험서 29권을 8개월간 모두 착실하게 정독한 셈이다. 그 기능을 떠나 그냥 숫자의 볼륨에서 어느 정도의 "마냥 논 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실제로 그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투척했고 그게 완전한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으니 누가 뭐라해도 괜찮다.

그것도 그렇고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문을 두드렸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엊그제 밤 허락되었고 나는 잘하면 내년 봄이나 초여름 즈음 한 달 정도 영국에 있을 수 있겠다. 그 때까지 돈을 좀 모으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자동 마드모아젤이라고 불렸던 그녀가 다다음주면 정자동 새댁이 된다. 아무래도 마드모아젤은 내가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는지 잘 모르고 반주를 부탁한 것 같으나, 나는 최소한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를 망쳐서는 안되겠다. 직접 고른 곡들을 홍대 Kinko's에 가져가 한 권으로 제본하는 계획이 생각처럼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아 애를 좀 먹었으나 별 건 아니다. 그나저나 축가를 부르신다는 선배님이 무슨 곡을 부르시는지 아직 악보를 보내시지 않아, 이건 좀 당황스럽다.

한편, 프레이즈 팀에는 첫 모임에 출석해서, 좋다, 새롭다, 좋다!를 연발해서 감탄해 놓고는 그 다음부터 연속으로 몇 주를 계속 못나가고 있어, 이거 나 모르게 내가 짤린거 아닐까 좀 마음이 쓰인다. 그건 진심이었는데.

상수 어디즈음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갔던 곳을, 일 주일 뒤 일부러 길을 잃어보자는 맘을 먹고 샅샅이 뒤지는 건 고단한 일이다. 맘을 먹으면 길이 안잃어지고(?) 어쩌다 보였던 그 식당은 맘을 먹은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곧 다시 바빠지기 전 테누토로, 느리고 진득하고 의미심장하게 보냈던 지난 주말이었다.

11.03.2013

a new project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는 상관없이 나는 오늘 소녀처럼 두근댔고 기대됐고 아무 한 일 없이 벌써부터 뿌듯하다. 이 프로젝트는 이를테면 "성숙"과 "순수"의 공존을 동경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조금씩 실현하거나 지향하고 싶은 마음, 아니면 그 비슷한 것에서 잉태되었을텐데. 이런 생각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이 기적적으로 느껴졌다. 꼭 이 신나고 (그들한테는) 멋진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오늘은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저 책상 위에 있는 이 사진 속의 것들이, 이 모든게 진행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도 신기해 죽겠다. 

난 저기 잘보면 보이는 나처럼 머리를 다시 빨리 기르고 싶어졌고 김칫국을 연상하는 각오같은 건 최대한 좌중하려고 하지만, 어떤 태도같은 것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낀다. 무시무시하게 아름답고 중요하고 가장 원천적인 것을 더 자주 기억하게 될테다. 어거지로 말고.

(고맙습니다, JH)

그 때 내가 지금처럼 기록을 뜸하게 남겼었다면, 아예 남기지 않았었더라면 어쩔뻔했는가. 2년 전 광화문 스타벅스 3층의 그 자리는 오늘의 그것처럼 그렇게 특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