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2013
november
나는 마시는 차 말고 굴러다니는 차 같은 거에는 영 관심이 없지만 올 9, 10월에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났던 꼬맹이의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저런 미니 모형들을 몇 백개를 수집했던 모양인데, 꼬맹이의 관심사에 내가 약간의 관심을 보이며 조금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자랑하듯 모형을 늘어놓으며 그 자동차들의 이름과 년도와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려주었었다. "쌈바"라고 불리는 듯한 저 버스 비스무리하게 생긴 자동차가 귀엽다고 하자 서슴없이 가지라고 내주었다. 그 뒤로 몇 번 만날때마다 저렇게 조금씩 주어 늘어나게 되었다. 어쨌거나 꼬맹이가 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가 애초에 만났던 목적 비슷한 걸 이루게 되어 다행이지만 무엇보다 꼬맹이가 그 순수한 열정을 오래도록 변함없이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6, 7, 8월 즈음 그런 꼬맹이들 둘을 더 만났었고 내가 도움이 됐으면 얼마나 됐겠느냐마는 모두 총명한 아이들이었던 터라 속 시원히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은 고작해야 열 셋, 열 넷인데 십 년 후 이들 앞에 펼쳐질 세상을 나는 지금 가늠해 볼 수도 없다. 나의 십 년 후, 40대의 내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없는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의 예측불가함이다.
11월인데, 어쩐지 벌써 올해가 마감되는 기분이다. 여러 상황적으로. 엊그제 나는 공식적으로는 올해에 있을 모든 번역 작업을 끝냈다. 세어보니 올해 모두 9작품을 번역했고 16개의 단막극을 번역했다. 아쉽게도 올 해 원하는 만큼 원하는 책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었지만 다다음 주 즈음이면 믿거나 말거나, 딱히 재밌다고 할 수 없는 문제들로 빽뺵한 수험서 29권을 8개월간 모두 착실하게 정독한 셈이다. 그 기능을 떠나 그냥 숫자의 볼륨에서 어느 정도의 "마냥 논 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실제로 그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투척했고 그게 완전한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으니 누가 뭐라해도 괜찮다.
그것도 그렇고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문을 두드렸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엊그제 밤 허락되었고 나는 잘하면 내년 봄이나 초여름 즈음 한 달 정도 영국에 있을 수 있겠다. 그 때까지 돈을 좀 모으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자동 마드모아젤이라고 불렸던 그녀가 다다음주면 정자동 새댁이 된다. 아무래도 마드모아젤은 내가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는지 잘 모르고 반주를 부탁한 것 같으나, 나는 최소한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를 망쳐서는 안되겠다. 직접 고른 곡들을 홍대 Kinko's에 가져가 한 권으로 제본하는 계획이 생각처럼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아 애를 좀 먹었으나 별 건 아니다. 그나저나 축가를 부르신다는 선배님이 무슨 곡을 부르시는지 아직 악보를 보내시지 않아, 이건 좀 당황스럽다.
한편, 프레이즈 팀에는 첫 모임에 출석해서, 좋다, 새롭다, 좋다!를 연발해서 감탄해 놓고는 그 다음부터 연속으로 몇 주를 계속 못나가고 있어, 이거 나 모르게 내가 짤린거 아닐까 좀 마음이 쓰인다. 그건 진심이었는데.
상수 어디즈음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갔던 곳을, 일 주일 뒤 일부러 길을 잃어보자는 맘을 먹고 샅샅이 뒤지는 건 고단한 일이다. 맘을 먹으면 길이 안잃어지고(?) 어쩌다 보였던 그 식당은 맘을 먹은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곧 다시 바빠지기 전 테누토로, 느리고 진득하고 의미심장하게 보냈던 지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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