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눈에 보이게 일어나는 변화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엊그제 취업턱 머먹을지 생각중이라는 친구에게
"취업이라고 하지마 나처럼 취업자주하는 애가 어딨냐.
그냥 프로젝트라고해. 프로젝트턱이라고 하자"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만기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들일 뿐이다.
오래걸릴듯 싶다가도 중간에 갑자기 끝나는 수도 있고
잠깐하는듯 싶다가도 의도치 않게 길어질수도 있는 프로젝트들.
또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는 수가 있다.
능력이나 장점과는 전혀 상관없이
스타일과 방향은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플랜이 없어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할까.
이렇게도 살게 하신다고 할까.
이렇게나 살게 하신다고 할까.
나를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한것.
다른 믿는 것이 분명한 것.
믿는 것이 유일한 것.
겨우 그제부터 일했을 뿐인데
이렇게 금붕어가 그려진 예쁜 봉투에 세뱃돈도 주고 말이다.
그것도 귀엽게 잔돈으로.
(다른 때 같으면 '애걔, 장난해?' 했을 법하지만
이 곳은 이미 나의 약점을 너무 잘 파악한 듯하다.
나는 봉투만 이쁘면 다 용서가 되는 속없는 인간.)
지우개 달린 연필도 노트 패드도 아름답고.
언제나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까지 대신 주창해주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팬트리도 갖춰주시고.
숫자들로 가득한 4개의 모니터가 있는 내 자리.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가능한 간지스러움
이 원류는 유아적 자의식.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선택했던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human dignity와 어느 정도의 decency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숫자는 숫자일 뿐 괜히 숫자에 감정, 기분, 편견 같은 거 이입하지 말기다
는 주의이지만
이것이 자칫 fundamentalist나 sentimentalist의 대사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정확하고 미묘한 표현을 찾아보려 한다.
숫자가 뭔지. 뭐가 될 수 있는지.
1개가 아닌 4개의 모니터는 오방 더 많은 엑셀작업을 의미한다.
라는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친 표현은 지양하고.
본업이 어디인가
혹은 본업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가
단지 일반화를 위한 편리에 의해 지어진 말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몇 달 기다리면 신호가 올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내 결정은 아닐테지만.
아 그런데
5시 반에 일어나 버스를 타도 광화문까지 서서가야 하는건 좀 말이 안된다.
좀 많이.
아. 빨간버스기사아저씨들. 아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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