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앞에 십 분 정도는 보지 못했다. 앉은지 십 분 정도 더 지났을까.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쿨한듯이 나가자 쿨하게 보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도 요란을 피우며 나갔다. 내 옆에 앉아있던 커플도 십분 정도 줄곧 귓속말로 킥킥대더니 "가자, 가자, 가" 하며 별로 손대지도 않은 것 같은 팝콘 콤보세트, 엑스라지사이즈 음료수를 들고 자리를 떴다. 끝까지 앉아 있던 사람들도 별로 미안한 눈치도 안보고 전화를 받는가하면 영화를 보는 중에 영화가 재미없다고 전화를 하기도 하는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해주셨다. 아무래도 Brad Pitt가 나온다니까 보러들 오신듯 했다. 보는 내내 내게는 전혀 그럴 만한 장면이 아닌데도 여기저기서 피식대고 낄낄대는 것이 여간 산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어제 퇴근하고 씨네큐브에서 볼걸 그랬다.
그들이 이해가 전혀 안가는 것은 아니다. 마치 동굴에서 부르는 듯하게 에코가 잔뜩 들어간 Arvo Part풍의 그레고리 성가, 너무 착하고 홀리해서 토요일 오후 애인과 같이 팝콘 먹으면서 소화시키기에는 오그라드는 음악들이 영화 내내 흐르는가 하면, 이렇다 할 플롯도 없고 대사도 없다. 그나마 있는 대사는 왜 줄곧 간지럽게 속삭여져야 하는 것인지. 아마도 제일 난감했을법 한 것은 관련이 없어보이는 장면들 자체일 것이다. 씨네마토그라피 자체는 누가보더라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저 가족하고 해파리, 공룡, 우주의 운석, 용암, 파도, 폭포, 숲 같은 것들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감독은 "왜" 한 가족, 혹은 개인이 고통을 겪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컨텍스트로 보여준다. 단순히 사소하다고 말하기에는 농도 짙은 감정과 강렬한 인식들이 녹아 있는 인간사지만, 그것에 한정된 보통 사람들의 시각을 넘어서 모든 자연현상과 우주의 움직임을 포괄하여 주관하는 어떤 하나의 주체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이 관점은 극 중 아버지의 적자생존식 그것보다는 어머니가 구현한 Grace, 혹은 사랑에 가깝다.) 이 관점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더라도 이러한 시각적인 경험에서 오는 경이로움은 언어로는 충분치 않다. 결국 대사가 별로 필요 없음이 맞다. 또 그나마 없는 대사 중 이렇게 특정대사가 - "Why?"와 "Where were you?"- 자주, 많이, 속삭여지는 영화도 여지껏 없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려지는 두 텍스트가 있다:
Then the Lord spoke to Job out of the storm. He said:
Who is this that obscures my plans
with words without knowledge?
Brace yourself like a man;
I will question you,
and you shall answer me.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earth's foundation?
Tell me, if you understand.
Who marked off its dimensions? Surely you know!
Who stretched a measuring line across it?
On what were its footings set,
or who laid its cornerstone -
while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and all the angels shouted for joy?
Who shut up the sea behind doors
when it burst forth from the womb,
When I made the clouds its garment
and wrapped it in thick darkness,
when I fixed limits for it
and set its doors and bars in place,
when I said, 'This far you may come and no farther;
here is where your proud waves halt'?
Job 38: 1 - 11
이렇게 '내가 누구냐' '내가 이런 것들을 할 때 너는 어딨었느냐'하는 반문은 38, 39, 40, 41장까지 계속된다. 42장이 되어서야 Job은 겨우 이렇게 대답한다:
Surely I spoke of things I did not understand,
things too wonderful for me to know.
다른 하나:
Now we see but a poor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1 Corinthians 13: 12
크레딧이 채 올라가기 시작하기도 전에 등은 어서나가라는 듯 환하게 켜졌고 관객들은 가혹한 인내심테스트였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누군가는 어떻게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느냐고 불만을 표했고 대부분의 떠드는 소리가 뭐 이런게 다 있냐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