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오래 걸려있는 듯 했던 영화들이 내린 것을 확인하고 퇴근 후 씨네큐브에 들렀다.
감독 Tom Tykwer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위 '지식인' 세 사람을 통해 사회-정치학, 과학, 섹스, 섹슈얼리티, Hermann Hesse, Moby-Dick, Lacan, Freud, 사랑, 콜라쥬, 전쟁, 죽음, 장르의 불분명한 경계, 혹은 장르속 장르, 작가의 의도, 상대적 관념, 관습에의 저항, 자유, 미학, 윤리, 혼돈 등의 주제들을 화면을 분리하거나 갑자기 정지시키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전혀 맥락없는것 같은 장면을 몇 초간 멀뚱히 보게하는 등 스타일리쉬하게, 좀 '있어보이게' 처리했다.
너무 많은 무거운 것들을 다소 가볍게 말하고 있는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채 생산된 어떤 것이 미치는 영향에도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말을 또 이들의 입을 빌려 함으로써 감독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지금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머쓱한 미끌미끌한 영화다.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꺠는 것 자체가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헤미안처럼 산다고 해서 모두가 다 크리에이티브한 것은 아니다.'고 전에 썼던 말이 생각이 나지만 'Style for style's sake'에 속한 영화로도 보여지므로 이런 자뭇 진지한 코멘트를 달기도 뭐하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감독이 '다 개인의 상대적인 취향이고 관점이지'라고 하는 것 같은 동안에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Why afraid of banality?
그래가지고 감독은 역설적으로 관객으로부터 '음악이 괜찮네', 'Simon처럼 생긴 마스크가 좋아', '영화가 좀 있어보여'같은 피드백 이상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나같이 이미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어느정도의 편견을 가진 관객은 뭐 이런 영화에 한없이 제너러스할 수 있지만서도.
여튼 감독이 직접 참여한 듯한 사운드트랙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참 전 영화 Perfume때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는데. 전과 같이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좀 아쉽다. 작년에 간신히 읽은 David Mitchell의 Cloud Atlas를 이 감독이 맡았다는 것은 좀 반가운 소식이다. 스타일과 전개 방식이 핵이라 할 수 있는 그 책을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3'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 제격이라는 것은 어쩐지 너무 당연하다. 그 영화에서는 조금 덜 프리텐셔스해주시면 더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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