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2011

Undeserved



어젯밤에 엄마가 오셨다. 내가 대충하는 청소를 제대로 해주시러. 손맛이 나는 꽃게탕을 해주시러. 며칠간 먹을 반찬을 해주시러. 세탁기에 넣으면 될 빨래들을 굳이 손빨래해주시러. 침대 시트와 이불을 바꿔주시러. 작년 겨울 교통사고 이후로는 운전도 안하시면서 보기 안쓰럽게 두 손 가득 무겁게 오셨다가 두 손 가득 더 무겁게 사라지신다. 

내가 알아서할게요. 내 맘도 좀 편하게 그냥 엄마 몸만 와서 푹 쉬다가 가면 안되나 해도. 그럴 수록 내가 없는 사이에 몰래왔다가 우렁각시 행세를 하시고는 바람처럼 사라지신다. 열 한해를 떨어져 살아도 엄마가 없으면 나는 굶고 다니는 줄 아신다. 지금쯤 두꺼운 솜이불로 바꿔주지 않으면 내가 추워서 잠도 못자는 줄 아신다.

늙고 피곤한 몸을 주무르며 "엄마 너무 마르다처럼 살면 안좋아",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늘의 상급이 가장 큰 사람이야" 같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내 스스로조차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모처럼 여유롭게 왔다가 내려가실 계획이었는데 오는 길부터 어느 집에 상이 났다고 연락이 오더랜다. 그래도 오늘 저녁은 같이 먹고 가시라고 퇴근하자 마자 뛰어왔는데. 회사에서 뛰어나오기 전 씨익 웃으며 종류별로 사탕도 한웅큼 집어왔는데. 

컴컴한 집에 들어와서 불을 켜자 커튼이 젖혀져 있는 유리벽에는 '안해도 되는 빨래를 뭐 이렇게 많이했냐'는 듯 전혀 바깥이 보이지 않게 김이 잔뜩 서려있고 식탁에는 막 찜통에서 나온 것 같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송편과 호박죽. 김밥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엄마가 적어놓고 간 연두색 포스트 잇이 그대로 있다: 사랑하는 딸. 맛있게 먹어. 엄마가.

엄마는 이번에도 편히 다리를 뻗어보지 못하고 가셨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이렇다 할 보상도 없이 삼십년 넘게 섬기시는 일을 오늘도 하러 가셨다. 나는 욱하고 저 위에 계신 분께 원망을 한다. 아 쫌 너무하시는 거 아니냐고. 엄마가 잠깐 쉬면 좀 안되는거냐고. 얼굴 보면 휴식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지 않냐고. 당신은 심지어 안봐도 다 아시는 분 아니냐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화가난 듯이 음식들을 입으로 집어넣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끼윽끼윽 울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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