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12

Books & Movies


Movies watched in January:

Midnight in Paris
Last Night
One Day
Barney's Version
Pina
PBS Up Series
Single Father (BBC TV drama)
The Private Life of A Masterpiece (BBC documentary series)
Melancholia


Books read in January:

Selected Writings of Ralph Waldo Emerson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나의 소소한 일상, 김춘미 역



왜 이렇게 안읽었냐고.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나요. 

1.30.2012

Time Off



나는 요즘 매우 적극적으로 저기압인 상태인데도 맘좋은 척하며 문자답도 잘 보내고 전화도 잘받고 사람들 앞에서는 잘도 실실 웃는다. 커피를 살 때도, 복사를 할 때도, 떡볶이를 살 때도,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 나는 아직 꽤나 괜찮은 인간인 줄 착각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그렇게 한다.

이따금 치통인지 헷갈릴 정도의 찌르는 듯한 통증을 수반한, 지끈거리는 머리는 이제 디폴트이고 팔근육과 어꺳죽지가 계속 뻐근하다 했더니. 엊그제 친구 아들녀석 (2010년 생)을 고작 몇 번 들었다 놨다 했을 뿐이다. 그들 로맨스의 열매. 그 분야에 있어 특히나 자격미달인 내겐 익숙하지 않고 너무 무거웠던 것. 

오늘 출근하지 않고 이것저것 조금씩 했다. 하루의 마감은 이런 좋은 것으로.


1.29.2012

ma folie

Asleep
Carl Holsoe


간드러지는 음악에도 전혀 꿈쩍을 안하는 까다로움. 왠만한 건 죄다 얕잡아본다. 어리석은 놀음을 자랑으로 아는 것. 허튼 곳에 쏟아 부어지는 날쌘 관찰력. 

멍청한 말도 지혜롭게 들을 수 있다. 지혜로운 말도 멍청하게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은 내 탓이고 내가 어떠하기 나름이다.


1.28.2012

Am I OK?

The Bourg de Batz Church Under the Moon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화를 낼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느정도 에너지가 소비되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에너지도 쓰라고 있는걸, 까지 의식이 닿으면 꽤 괜찮아지고 또 괜찮아지면 바로 잊어버리는 성미가 되가는 것 같아 그런 것은 참 편리하다. 그렇지만 두통과 한숨은 왠일인지 걷잡을 수 없이 잦아진다.


1.27.2012

05 Mademoiselle



문제의 Rouge Coco 05 Mademoiselle. 명절에 대전에 내려갔다가 쓰던 것을 놓고와버려서 엊그제 새로 구입했는데 졸린 눈을 하고 다니다가 그제 길에 흘려버렸다. 어젠 퇴근 후 효자동에 가느라 입술을 칠하지 못하고 오늘 들러 무표정으로 똑같은 것을 재구입했다. 집에 가는 길이고, 입술이 빨갛다 어떻다 할 수도 없이 어둑어둑한데도 기어코 길에 멈춰서서 곰곰이 입술을 칠하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불그스름한 입술을 하고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집까지 걸었다. 

성냥갑을 열어보니 남은 성냥이 딱 한 개다. 불발일까 아슬아슬하게 불을 붙이고 초를 태우니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죽이 잘 맞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와, 결국엔 다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들이고 똑같은 얘길테다,를 동시에 생각했다.

아직 진보와 퇴보를 번갈아 한다; 진보 두 발짝 할 때 마다 퇴보 다섯 발짝인 것 같아 어쩐지 좀 억울하다.   

회사 PC가 말썽을 부려 뜸을 들이는 사이에, 몇 년만인 것 같은 기분으로 책상정리를 하다가 전에 출력해놓은 Joan Didion의 Goodbye To All That을 다시 읽었다. 

Nothing was irrevocable; everything was within reach. Just around every corner lay something curious and interesting, something I had never before seen or done or known about. [...] I could make promises to myself and to other people and there would be all the time in the world to keep them. I could stay up all night and make mistakes, and none of them would count. [...]

That was the year, my twenty-eight, when I was discovering that not all of the promises would be kept, that some things are in fact irrevocable and that it had counted after all, every evasion and every procrastination, every word, all of it. 

특히 어떤 부분을 I am on some indefinitely extended leave from wherever I belong이라고 주어만 바꿔읽어 가슴팍에 와 꽂히도록 했다.


Tomasz Stańko Quartet, "Song For Sarah"




Tomasz Stańko Quartet, "Sweet Thing"






Glühwein


자기네들 책읽는 공간에 덤으로 딸려 있는 듯한 부엌에서 나온 닭고기와 돼지고기요리는 주인의 마음 -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성의껏 만들어내왔으니 욕하면 당신들이 나쁜거다. 이름도 착하게, 목화식당,이라고 해놨으니 당신들은 절대 더이상 뭐라할 수가 없다 - 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 여기가서 글루바인 두 잔을 마시고 얼굴이 빨개졌다.
뜨뜻미지근한 겸양따위 나도 별로지만, 정말 잘 모르겠을 땐 어떡합니까. 

빛깔 있는 것 치고 빛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형체있는 것 치고 맵시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결국 같은 말을 두 번씩해서 누군가는 저런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놨네. 


1.25.2012

自問自答

Sunset by the Sea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여자는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떻게 될까'와 '이대로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를 왔다갔다하는 것 같다. 호기심과 초조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랍시고 들어온지가 이제 곧 일년을 꽉채워간다. 나는 원래도 그리 똑똑한 편은 못되었지만 나날이 바보가 되어감이 그만 느껴졌으면 할 정도로 자명하다. 오늘, 괜찮냐, 는 열번의 자문에, 아홉 번은, 아니 안괜춘해,라고 자답한 것 같다.

답답하고, 답답한 본인에 싫증이 난다는 뻔한 핑계를 대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스페인산 적포도주 한병 챙겨왔음이다. 자꾸 이러면 안되는데 자꾸 이렇게 되네. 허허.
느는 것은 오직 넉살뿐.

1.24.2012

A Question of Time

The Sun Setting on the Sea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언제 빨간펜을 들어 각진 논리로 분석에 들어갈지 알고 그렇게 하는 것. 보기좋게 타오르는 아궁이에 언제 찬물을 끼얹을지 알고 끼얹는 것.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돌아서는 것. 아름답다고 한들 어려운 문제다.

아, 모르겠다. 그런건 모르겠고,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안해도 뭔가 하는 셈이 될 때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그대로 존재해버리고 말겠다. 보란듯도 아니고 보지말란듯도 아니고 보던말던 듯.



歲拜

Fireworks Over the Port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엄마 아빠 제가 왔습니다. 서른 둘 닭이 되어 여태 알이라 할 만한 것을 보여드린 적 없는 것 같지만 저는 전혀 불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장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한 끼 식사 같이 하고 세배만 드리고 올라온 셈이다. 어쩐지 세배를 오래간만에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니, 남자들처럼 넙죽 엎드려서 하는 큰절을 드렸더니 엄마아빠가 당황해하시며, 얘 얘 너 어디가서 그러면 큰 망신이다, 이걸 어쩐다니, 하시며 두 분다 경쟁하시듯 일어나  천천히 다소곳이 앉아 고개만 사뿐히 약간 앞으로 숙이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다시했다. 다소곳이 앉는 것까진 대충 비슷하게 했는데 그리고 나서 살짝 앞으로 숙이는게 아니라 다시 넙죽 엎드려서 좀 망했다. 건강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고 예수 잘 믿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저 오냐오냐 하시는 것이, 별 감흥이 없으신 것 같았다. 나도 두 분으로부터 덕담을 들으면서 주억거리며 앉아있다가 약간의 침묵이 흐를 즈음 엄마가 앞뒤 맥락 전혀 없이 내게 그러신다: 이쁘네. 

우리 집안 전례없는 대사라 나는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그런 대사 쯤은 있을 수도 있다는 듯, 어제 집에 올 때 탄 택시운전사도 나를 미인이라 불러 고개를 푹 숙이고 왔노라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안들어도 될 말을 얻어 듣는다: 그런 말은 곧이 듣는게 아니야. 바보같이. 

집 화단에 색색의 예쁜 꽃들이 많이도 폈다. 꽃이 좀 특이하게 생긴 꽃나무가 여럿있는데 엄마가 외출하신 사이에 아빠가, 자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꽃은 엄마에게도 별로일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꽃들을 가위로 다 잘라놓으시고는, 나 잘했지?, 하셨단다. 엄마가 차마 화는 못내시고 다음에 또 그러면 집에서 쫓아낸다고 농담(이 반도 안되었으리라)하자, 아빠: 오 제발 쫓아내지 말아주오.

식사 중에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질듯 한숨을 쉬어 핀잔을 들었다. 버릇이 됐다.

티비를 켜봤다. 돌리는 채널마다 유재석, 정형돈, 정재형, 노홍철이 나오는 현상이 좀 이상했다. 슈렉 쓰리를 오분정도 보다가 꺼버렸다.

Bach Goldberg Variations와 Rachmaninoff의 Etudes, Chopin Piano Sonata 2번만 들고 내려갔었다. 피아노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놀면서 녹음도 해보고, 꽤 재밌었다.



1.21.2012

An Unnecessary Confession

Sailboats at Sea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오전에 집 근처 투썸에서 커피를 두 대접정도 마셨다. Sartre와 Simone de Beauvoir의 화요 모임이 떠오르려는 걸 아서라했다. 괄호 안에 넣어도 창피할 말을 괜스레 덜컥 꺼내놓고 아무짓도 안한다. 어쩌겠다는 거냐. 괜찮아. 그러려고 만나는 거 아니겠어. 얼굴을 보면 대충 용서가 돼. 만족스러운 말은, 당시에는 생각나지 않아서 꼭 나중에 이걸 말할 걸, 저걸 말할걸 하게 된다.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안되면 안되는대로 어떻게 되버리는 거지. 

이웃동네 마드모아젤과 스시를 먹었다. 그녀가 걸친 은색 목걸이가 맘에 들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도 아는 그가 사준 거란다. 짜식, 보는 눈은 있었네,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말해버린다. 나도 그녀도 원래 악세서리같은 것에는 크게 취미가 없지만 그런 것은 괜찮네, 인정해버리자마자 나도 사고 싶다는 욕망이 우글우글 올라왔다. 안그래도 엊그제 교보에 갔다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스와로브브키를 쓰윽 둘러봤었다.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언제 한번 다시 쓰윽 말고 어떻게 좀 다르게 봐야겠다. 

Plato의 The Republic을 사려고 슬슬 걸어서 교보에 갔다가, 지난 번 광화문점에서 보다가 누가 사가는 바람에 멈춰버린 오사무의 <나의 소소한 일상>을 발견하고 적당한 데 자리잡고 앉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말한다. 
"이 열매는 내 알통이야. 보게. 꽉 힘을 주면, 보라고. 불끈불끈 알이 부풀어. 좀 더 힘을 주면 이 열매가 빨개진다네. 아아,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네. 이발하고 싶군."
자귀나무 모종이 말한다. 
"이렇게 잎을 접고 자는 척하고 있자. 지금은 잎이 겨우 두 장 밖에 없지만 오년만 지나면 예쁜 꽃이 필거라고."
무가 말한다. 
"우엉인 척 하고 있으려구요. 전 유순하게 체념했거든요."
목화 모종이 말한다. 
"난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나중에는 방석이 된대. 정말일까? 어쩐지 자조하고 싶어 죽겠어. 경멸하지 마세요."
수세미가 말한다. 
"에, 그러니까 이렇게 가서, 이렇게 휘감으라는 건가. 난 불행한 수세미인지도 몰라."
꽃피지 않은 국화가 말한다. "시생멸법. 성자필쇠. 차라리 둔갑해서 나타날까봐."

나는 쿡쿡거리며 읽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웃겨져서 책에 머리를 쳐박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끅끅댔다. 


Plato를 읽은 다음에는 Bertrand Russell의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라는 제목도 거창한 책을 읽을 것이다. 분당점에 재고가 세 권이나 꽂혀있는 것을 봤는데 그 표지조차 간지라는 걸 확인했다. 빨리 사야한다, 가 자동이다. 그 다음에는 소설을 하나쯤 읽어도 괜찮겠지. Hemingway. 차례대로 읽고 내던지기. 

한참 전, 서울에 살 때 일이다. 매일 외출하기 전, 오늘 내가 밖에서 어찌어찌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니 창피하지 않게 방을 깨끗이 치우고 나가자, 가 습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속옷장을 통채로 털렸다. 문을 잠그지 않고 잠깐 집 앞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벌어진 상황이다. 비오템인가 어딘가에서 줬던 환경 백에 그 사람은 허둥지둥 내 속옷을 챙겨 달아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정장 차림이었고 공공칠 가방을 손에 들고 환경 백을 어깨에 메고 복도 끝을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 전혀 웃기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12에 전화를 했다. 경찰이 왔다. 그런 사람은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렸다. 꿈이 아니었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전화도 못하고 나는 무서워서 밤새도록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 교보에서 흥이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는 촌스러운 퓨전 재즈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 이상했다. 

책을 보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고단해져 페이지를 수를 외워버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을 때야 바로 옆에 대단한 미남이 앉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렇다고 다시 앉아버릴 수도 없어, 서늘한 척 미술 도구 파는 쪽으로 가 캔버스와 쥐어든 책의 계산을 치루고 서점을 나와버렸다. 

그런데, 누구누구씨에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누구누구씨 미안해요.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가 오늘 부모님 댁에는 못내려갔어요. 정말이지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내일은 꼭 내려가겠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일곱 시 예배를 드리고 바로 버스터미널에 갈거에요. 매사에 이런 식이지요. 아니에요. 매사는 아닐지도 몰라요.


The UP Series



휴가를 냈다.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PBS의 UP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1964년부터 2005년 까지 7년 간격으로, 각자 다른 배경에서 자란 열 명 남짓의 일곱살 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처음부터 사회 계층, 인종, 부의 분배, 교육의 기회와 가치 등에 논점을 둔 다큐 같았으나, 그런 것은 화면에서 급속하게 나이가 들어 학교를 졸업하거나 졸업하지 않고,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둘 낳거나, 셋 낳거나, 넷 낳고, 몸이 퉁퉁해지고 머리가 빠지는 이 꼬마들의 라이프스토리에 몰입해가는 관객의 입장에서, 완전히 핀트가 엇나간 이슈라고 생각했다. 음. 아마도 관객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역시 개인적인 의견이다.

지금 너가 관심을 두고 있거나 관심있다고 생각하거나,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곧 지나고, 변할 것이니 지나치게 신나할 것도 지나치게 풀이 죽거나 슬퍼할 것도 없다, 라는 것은 매사에 펄럭이지 않는 진중한 인품 만들기를 부추기는 데에 반해, 매 순간 팔딱거리는 생명력을 오롯이 살아내는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작은 것에 감동하는 앳된 마음 같은 것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두 개 다 내가 의도한 범위 내에서는 좋은 것들이니, 아직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은 그렇게 서로 모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튼 올해 이 꼬마들은 56세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TV에 안나오게 조용히 살자.

다큐를 보면서 풍경화 한 점, 정물화 한 점을 그렸다. 바로 전만큼의 졸작들은 아니라 다행이다. 새로 공수된 물감을 의식해서 그런지 (고맙습니다!) 물감을 꾹꾹짜서 옅은 색이라도 두껍게 칠했더니 또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는 그동안 미루던 일을 했다.
나는 요리하는 것과 설거지 하는 것 둘 다 꽤 즐기는 편이지만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 만큼은 나날이 비위가 약해져가고 있다. 원래 비위가 유난스러운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어가는 현상은 나의 허영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소위 아줌마들의 뚝심은 음식 찌꺼기와 아가들의 응가 처리, 욕실 청소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메스꺼운 불결함과 더러움을 대하는 법을 터득하거나 아예 그런것에 무뎌질 수 있는 능력과 아주 관계가 없지 않다고 본다.

1.19.2012

Pina

Sunset on the Coast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아침에 사과를 깎기 전,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는데 누군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냐고 여쭤보니 괜찮으시댔다. 그런데 정말로 코피를 흘리면서도 괜찮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어제 나는 36색 유화물감이 생겼다. 지금 쓰고 있는 12색 물감중에서 가장 많이 쓴 흰색이 무려 두 배 사이즈로 두개나 더 들어있는, 황송한 물감이다. 원래 쓰던 물감으로도 보통 그리는 캔버스로 치자면 50장도 더 넘게 생산해 낼 수 있을 듯 한데 말이다. 사실 물감도, 캔버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더군다나 나는 지난번 무심히 한 시간 정도 들여 졸작을 하나 덩그러니 그려놓고 그 형편없음의 정도에 정신이 바짝 깰 만큼 충격을 먹어, 그 후 붓을 드는 것에 주춤하고 있는 상태이다.

너의 지성과 위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두루 넓게 경험하는 실험 정신은 참 멋지구나!

나는 이제 방자한 짓은 약간 정도 삼가고 십여 년 전 뭣도 모르고 싫증냈던 일본어를 다시 들여다 봄 직도 하고 뭣도 모르고 알고 싶어했던 이태리어에 대한 거품이 다 빠지기 전에 얼른, 한달만 하면 단테만큼 한다, 같은, 글자보다 컬러풀한 그림이 더 많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도 하나 공수해봐야 겠다고 생각만 한다.

보통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편인 나는 요즘따라 점심 때 무엇을 먹고 싶은지 헷갈리거나 꼭 먹어야 하는 상태인 건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아 그냥 하릴없이 광화문을 헤매는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이번 주에는 계속 교보문고에 가서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조금씩 읽는 중이다. 엊그제 낄낄대며 보던, '나의 소소한 일상'은 원래 잘 나가는 책이었는지 바로 그 다음날 사라져버렸고 어제는 그의 단편 중 '유다의 고백'을 읽었다. 오늘은 '고향'과 '달려라 메로스'를 읽었다. 단편에 조금 물려서 '만년'이라는 소설을 조금 읽다가 시간이 되어 사무실에 돌아왔다. 운동 역부족인 나는 조금만 그렇게 서서 책을 읽어도 금새 힘이 들어가 얼굴이 불그스름 해지는데 그 모습은 어색하고 촌스럽기 그지없을 것이 분명하다. 

귤 네개를 연속으로 까서 한번에 털어넣었다.

보시다시피 나는 요즘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라는 이름도 긴 화가의 그림에 빠져있다.

퇴근 후 집에 바로 와서 오랜만에 해산물을 넣고 음식다운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와인을 좀 했다. 식사를 하면서 옆동네 어여쁜 마드모아젤로부터 공수한, 아껴두었던 다큐멘터리 Pina를 보았더니, 씹어넘긴 스파게티 가락이 씹어지지 않은 원래의 상태로 입에서 되뱉어져나오는 것 같은 기이하고도 충격적인 경험을 한 듯 하다. 일어나 움직이기 싫을 때 종종 꺼내봐야 겠다. (사실 나는 어제 광화문에서 서대문까지 약간 걸음 걸었음에도 요란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엄살을 떨었던 모양이다.) 배에 구멍이 난 것처럼 춤을 추는 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려다 배에 구멍이 난 적이 없어 그만 두었다. 그렇지만 연상시키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연상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맞다.

영화에서 좋았던 음악들 몇 개 모아둔다.  

Jun Miyake, Here And After



Jun Miyake, Lilies of the valley



René Aubry, Memoires de Futur



Thom Hanreich, Glasshouse



some words

Pont Aven in the Moonlight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5시면 벌떡 일어나던 때가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의 이 몸뚱이를 가진 인간이 그때도 맞았는지 믿기 어렵다. 요즘은 알람을 5시 20분에 맞춰놓고 그 이후로 6시까지 5분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Kings of Convenience가 노래를 하고 Miles Davis가 트럼펫을 불어제껴도, 누가 보면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하는 열렬한 신자처럼 콩벌레 모양을 한 채, 아침마다 의식적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오 정말 일어나야 합니까. 정말입니까. 아니면 안되겠습니까. 아니, 왜 그래야 한답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이니까. 오.. 그냥 일어나지도 않고 안일어나지도 않는 그런 것은 없습니까.. 유치한 땡깡에 스스로 포기할 때 즈음에서야, 결국 초고속으로 샤워를 하고 스킨 로션 썬크림 파우더를 간신히 묻힐 시간만을 남겨두고 눈을 그대로 감은 채 그르렁하며 욕실로 향한다.

지난 주말에는 나보다 20년 어린 이 친구를 만났다. 전에 쓴 산문 내용을 이번에는 5분 가량 이어지는 구어체로 바꾸는 데 혹여나 도움이 될 까 나를 불렀던 거였다. 의자 두 개를 마주보게 놓고 방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강하다, 눈이 부시다, 허기지다, 고 요란스럽게 집을 나와 부첼라에 갔었다. 그녀의 글의 마지막 부분은 막 스티브 잡스를 인용하며 다소 격양되는 어조이다. 사람은 내일 할 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막 뛰고 흥분되어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구가 두 쪽나는 중에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빠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중심 생각이다. 그렇지, 그렇게 쓰면 되겠다고, 연신 부추기고 있던 나는 어떤 적당한 표정을 걸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름 아닌 이런 것에 나는 전문가가 되었나.)

재작년 여름쯤 Itunes 강의 중에서 관심있게 보던 Michael Sandel이 오늘 오전 열시 즈음부터 오후까지 나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점심 시간에 교보문고에 가는 길에 지나며 괜히 사진을 한장 찍긴 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하버드에서 강의를 할 때나, 강의를  준비할 때나 화장실에 갈 때, 나 역시 턱을 괴고 있거나 콩벌레 모양으로 엎어져 있거나 제로 콜라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며 살아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생겼고 뭐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말하고 말할 때는 어떻게 움직이고 그의 부분적인 생각들 같은 것을 알지만 그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알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 역시 나의 필요에 의해 유명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내가 일하는 빌딩에 와있다 해서 우리 둘의 관계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뭐 그런 당연한 말을 그리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나. 말이니깐. 여하튼, 사진은 찍었지만 사실 샌들씨보다도 동시통역하던 여성분을 눈으로 찾으며, 저건 또 어떻게 하는 거야, 고 눈썹을 치켜떴던 것 뿐.

오늘 하루를 씽씽 잘 가게 해준 한 흥미로운 블로그를 발견했다. 나는 종일 나의 루틴도 잊고 그것을 들여다봤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계시는, 스무다섯즈음으로 보이는 사내분이다. 차라리 군대 시절이 그립다는 남자가 생각났다. 차라리가 아니라, 군대에 가야지, 그렇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편지를 쓴다던가 하는, 귀찮아서 미루고 안할 일을 일부러 하고, 유치하다고 거드름이나 피울 일에 히죽거리게 되니 삶이 오히려 풍족해지는 듯 싶기도 하다.

아아, 나는 지금 군대에 있는 건가?

퇴근을 하고 씨네큐브에 가 Barney's Version을 보았다.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Rosamund Pike의 눈과 미소에 좀 반해버렸다.

오늘 콩밭에 가 있던 것은 왠지 마음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17.2012

Aura

Sunset in Briere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오늘도 턱을 괴고 오직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것.

여자는 해가 떨어지고 나서 별 다른 델 가지도 않으면서, 새로 구입한 향수를 귀밑에 바르고는 흐뭇해한다. 좋단다.
단순하고 엉뚱하다. 또 정말이지 끔찍하게 복잡하고 예측가능하기도 하다.



1.16.2012

deux sortes de poids

Cottage in the Moonlight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검푸른 물에 잠겨있는 것. 아무런 빛도 없고 아무도 따라 들어오지 못할만큼 깊이 들어가 숨마저 아껴쉬고 있는 그런 상태. 눈을 감고 있는 바로 그 때, 아무데서도 보지 못한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을 보게될 수도. 더이상 소음도 과장도 아닌 인생에서 벗어나, 그때서야 다시 살아 펄떡일 수도.  

모든 기회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내 것이 되어서 좋은 것이 아니면 그런 기회는 애초에 오지 않는 것이 낫다. 아쉬워할 것은 없지만 대신 험블해질 필요는 있다. 어련히 나보다 잘 아시는 분이 알아서 하고 계시는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그 좁고 퀘퀘한 자기 세계에 갇혀, 상처도, 성장도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는 신호다. 뭐 얼마나 쓸모있기를 바랬다고. 쓸모있게 산다는 의미가 뭔지 알고 있기나 했냐고. 

대부분은 얄팍한 쑈를 위해 연습되어진 것들. 


1.15.2012

Sell The Throne?

White Carnations
Henri Fantin Latour


고작 그런 것에 팔아넘기겠다고?



1.13.2012

1.12.2012

The God of Daniel

White Cup and Saucer
Henri Fantin Latour


Even if you don't...






1.11.2012

Emerson, again.


[...] For all our penny-wisdom, for all our soul-destroying slavery to habit, it is not to be doubted, that all men have sublime thoughts; that all men value the few real hours of life; they love to be heard; they love to be caught up into the vision of principles. We mark with light in the memory the few interviews we have had, in the dreary years of routine and of sin, with souls that made our souls wiser; that spoke what we thought; that told us what we knew; that gave us leave to be what we inly were. [...]

[...] Can we not leave, to such as love it, the virtue that glitters for the commendation of society, and ourselves pierce the deep solitudes of absolute ability and worth?

[...] Rather let the breath of new life be breathed by you through the forms already existing. For, if once you are alive, you shall find they shall become plastic and new. The remedy to their deformity is, first, soul, and second, soul, and evermore, soul. [...]

- R. W. Ermerson


#. Marilynne Robinson의 작품들을 만났을 때처럼 같은 문장 수 번 읽게 하고, 멈추고, 다시 돌아가게 하고 있는 그의 일기와 산문집. 정초부터 들고 다닌 책이지만 반 정도 더 남은 것이, 조급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달다. 고프고, 에, 또, 고달프기도 해서 더 그럴수도. 

#. Shining in lower places, where nobody watches you, that's what I call Beauty.



1.10.2012

A Life of Perpetual Anxiety



영원히 출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출근하지 않은 한낮의 여유를 방해하는 아이러니. 
매여있기는 답답해서 싫다하고 고삐가 풀어지면 불안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엉성함.

we're all bound to live in a state of perpetual anxiety unless...



1.09.2012

mon lit


오랜만에 몽리에 갔습니다.
사연 하나 없는 때와 장소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여튼 그 사연 얽힌 곳에서 다시 한번 솔직해지기를 시도했습니다.

아무도 화가나거나 불쾌해진 것 같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특히 그럴 때 선뜻 내미는 악수에는 지치고 싫증난 인간사에도 수 년 더 애착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이 저기에 있는 것과 눈 앞에 없는 어떤 것까지 설명하는 것처럼, 그런 한 방울의 친절과 따뜻함은 그 자체로 곧 바다입니다.

:)



Proverbes 16: 25


Telle voie paraît droite à un homme, mais son issue, c'est la mort.


To be fair, one needs to be discerning first. 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나도 내가 맞는 건지 잘 몰라서. 


1.07.2012

R.W.E. on Language

Woman in Interior
Carl Holsoe

A man's power to connect his thought with its proper symbol, and so to utter it, depends on the simplicity of his character, that is, upon his love of truth and his desire to communicate it without loss. The corruption of man is followed by the corruption of language. When simplicity of character and the sovereignty of ideas is broken up by the prevalence of secondary desires, the desire of riches, of pleasure, of power, and of praise, - and duplicity and falsehood take the place of simplicity and truth, the power over nature as an interpreter of the will is in a degree lost; new imagery ceases to be created, and old words are perverted to stand for things which are not; a paper currency is employed, when there is no bullion in the vaults. In due time, the fraud is manifest, and words lose all power to stimulate the understanding or the affections. - R. W. Emerson


me, immersed in secondary desires, nodding blankly.


1.06.2012

les paroles en l'air

Landscape with Trees
Pierre Auguste Renoir


한숨이 부쩍 늘었다. 설명하면 얼마나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요란한 빈 수레마냥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증명을 하고 앉아있나. 보이는게 겨우 전부라고 해도 괜찮을텐데. 

뭔가 슝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묵직한 것이었더라면 그렇게 빨리 지나갈리 없다. 그렇다면 서둘러 지나간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지켜보고 있노라니 덩달아 잠시 휘청한 것 같기도 하다.

(I realize that being taken seriously is not always flattering.) 


1.04.2012

Qui suis-je...



Qui suis-je pour vous juger?
mais... (mais, quoi?)
... back to square one.
darn hard it is.

(we're all incredibly judgmental, aren't we?)


1.03.2012

Coeur et Corps


Un coeur calme est la vie du corps, 
Mais l'envie est la carie des os.

Proverbes 14: 10


Un coeur calme을 미처 구비하지 못하셨다면 l'envie를 이기기 위해서 excellence라도 갖추셔야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요. 힘든거죠.





1.02.2012

Last Night



brilliant performances (특히 머릿속을 백지로 만드는 Guillaume Canet의 눈웃음..도 연기라면) and beautiful soundtracks.

Like Any Other Day


어제는 지난해 본 책과 영화를 정리하다 보니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났지만, 오늘은 여느날과 별 다르지 않게 저렇게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그림의 질과는 상관없이 초고속으로 색을 칠했습니다.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니 저렇게 손도 보이지 않더랍니다. 더 잘 그릴 수 있어, 가 아니라, 나 더 빨리 그릴수 있어, 라고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붓을 든 채로 데굴데굴 구르며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자못 범상치 않은 스케일의 각오, 같은 것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있는 자리를 티안나게 지키거나 걷고 싶을 때 걷고, 티가 날 것 같을 때는 왠만하면 'go low'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있는 것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 것도 좋겠습니다.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감각이 갖춰지면 더 좋겠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몇번 바닥에 앉았다 일어났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 올해도 가는 줄 모르게 잘만 가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