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012

An Unnecessary Confession

Sailboats at Sea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오전에 집 근처 투썸에서 커피를 두 대접정도 마셨다. Sartre와 Simone de Beauvoir의 화요 모임이 떠오르려는 걸 아서라했다. 괄호 안에 넣어도 창피할 말을 괜스레 덜컥 꺼내놓고 아무짓도 안한다. 어쩌겠다는 거냐. 괜찮아. 그러려고 만나는 거 아니겠어. 얼굴을 보면 대충 용서가 돼. 만족스러운 말은, 당시에는 생각나지 않아서 꼭 나중에 이걸 말할 걸, 저걸 말할걸 하게 된다.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안되면 안되는대로 어떻게 되버리는 거지. 

이웃동네 마드모아젤과 스시를 먹었다. 그녀가 걸친 은색 목걸이가 맘에 들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도 아는 그가 사준 거란다. 짜식, 보는 눈은 있었네,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말해버린다. 나도 그녀도 원래 악세서리같은 것에는 크게 취미가 없지만 그런 것은 괜찮네, 인정해버리자마자 나도 사고 싶다는 욕망이 우글우글 올라왔다. 안그래도 엊그제 교보에 갔다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스와로브브키를 쓰윽 둘러봤었다.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언제 한번 다시 쓰윽 말고 어떻게 좀 다르게 봐야겠다. 

Plato의 The Republic을 사려고 슬슬 걸어서 교보에 갔다가, 지난 번 광화문점에서 보다가 누가 사가는 바람에 멈춰버린 오사무의 <나의 소소한 일상>을 발견하고 적당한 데 자리잡고 앉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말한다. 
"이 열매는 내 알통이야. 보게. 꽉 힘을 주면, 보라고. 불끈불끈 알이 부풀어. 좀 더 힘을 주면 이 열매가 빨개진다네. 아아,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네. 이발하고 싶군."
자귀나무 모종이 말한다. 
"이렇게 잎을 접고 자는 척하고 있자. 지금은 잎이 겨우 두 장 밖에 없지만 오년만 지나면 예쁜 꽃이 필거라고."
무가 말한다. 
"우엉인 척 하고 있으려구요. 전 유순하게 체념했거든요."
목화 모종이 말한다. 
"난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나중에는 방석이 된대. 정말일까? 어쩐지 자조하고 싶어 죽겠어. 경멸하지 마세요."
수세미가 말한다. 
"에, 그러니까 이렇게 가서, 이렇게 휘감으라는 건가. 난 불행한 수세미인지도 몰라."
꽃피지 않은 국화가 말한다. "시생멸법. 성자필쇠. 차라리 둔갑해서 나타날까봐."

나는 쿡쿡거리며 읽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웃겨져서 책에 머리를 쳐박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끅끅댔다. 


Plato를 읽은 다음에는 Bertrand Russell의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라는 제목도 거창한 책을 읽을 것이다. 분당점에 재고가 세 권이나 꽂혀있는 것을 봤는데 그 표지조차 간지라는 걸 확인했다. 빨리 사야한다, 가 자동이다. 그 다음에는 소설을 하나쯤 읽어도 괜찮겠지. Hemingway. 차례대로 읽고 내던지기. 

한참 전, 서울에 살 때 일이다. 매일 외출하기 전, 오늘 내가 밖에서 어찌어찌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니 창피하지 않게 방을 깨끗이 치우고 나가자, 가 습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속옷장을 통채로 털렸다. 문을 잠그지 않고 잠깐 집 앞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벌어진 상황이다. 비오템인가 어딘가에서 줬던 환경 백에 그 사람은 허둥지둥 내 속옷을 챙겨 달아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정장 차림이었고 공공칠 가방을 손에 들고 환경 백을 어깨에 메고 복도 끝을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 전혀 웃기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12에 전화를 했다. 경찰이 왔다. 그런 사람은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렸다. 꿈이 아니었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전화도 못하고 나는 무서워서 밤새도록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 교보에서 흥이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는 촌스러운 퓨전 재즈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 이상했다. 

책을 보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고단해져 페이지를 수를 외워버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을 때야 바로 옆에 대단한 미남이 앉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렇다고 다시 앉아버릴 수도 없어, 서늘한 척 미술 도구 파는 쪽으로 가 캔버스와 쥐어든 책의 계산을 치루고 서점을 나와버렸다. 

그런데, 누구누구씨에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누구누구씨 미안해요.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가 오늘 부모님 댁에는 못내려갔어요. 정말이지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내일은 꼭 내려가겠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일곱 시 예배를 드리고 바로 버스터미널에 갈거에요. 매사에 이런 식이지요. 아니에요. 매사는 아닐지도 몰라요.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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