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012

歲拜

Fireworks Over the Port
Ferdinand Loyen Du Puigaudeau

엄마 아빠 제가 왔습니다. 서른 둘 닭이 되어 여태 알이라 할 만한 것을 보여드린 적 없는 것 같지만 저는 전혀 불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장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한 끼 식사 같이 하고 세배만 드리고 올라온 셈이다. 어쩐지 세배를 오래간만에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니, 남자들처럼 넙죽 엎드려서 하는 큰절을 드렸더니 엄마아빠가 당황해하시며, 얘 얘 너 어디가서 그러면 큰 망신이다, 이걸 어쩐다니, 하시며 두 분다 경쟁하시듯 일어나  천천히 다소곳이 앉아 고개만 사뿐히 약간 앞으로 숙이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다시했다. 다소곳이 앉는 것까진 대충 비슷하게 했는데 그리고 나서 살짝 앞으로 숙이는게 아니라 다시 넙죽 엎드려서 좀 망했다. 건강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고 예수 잘 믿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저 오냐오냐 하시는 것이, 별 감흥이 없으신 것 같았다. 나도 두 분으로부터 덕담을 들으면서 주억거리며 앉아있다가 약간의 침묵이 흐를 즈음 엄마가 앞뒤 맥락 전혀 없이 내게 그러신다: 이쁘네. 

우리 집안 전례없는 대사라 나는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그런 대사 쯤은 있을 수도 있다는 듯, 어제 집에 올 때 탄 택시운전사도 나를 미인이라 불러 고개를 푹 숙이고 왔노라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안들어도 될 말을 얻어 듣는다: 그런 말은 곧이 듣는게 아니야. 바보같이. 

집 화단에 색색의 예쁜 꽃들이 많이도 폈다. 꽃이 좀 특이하게 생긴 꽃나무가 여럿있는데 엄마가 외출하신 사이에 아빠가, 자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꽃은 엄마에게도 별로일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꽃들을 가위로 다 잘라놓으시고는, 나 잘했지?, 하셨단다. 엄마가 차마 화는 못내시고 다음에 또 그러면 집에서 쫓아낸다고 농담(이 반도 안되었으리라)하자, 아빠: 오 제발 쫓아내지 말아주오.

식사 중에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질듯 한숨을 쉬어 핀잔을 들었다. 버릇이 됐다.

티비를 켜봤다. 돌리는 채널마다 유재석, 정형돈, 정재형, 노홍철이 나오는 현상이 좀 이상했다. 슈렉 쓰리를 오분정도 보다가 꺼버렸다.

Bach Goldberg Variations와 Rachmaninoff의 Etudes, Chopin Piano Sonata 2번만 들고 내려갔었다. 피아노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놀면서 녹음도 해보고, 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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