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012

Ashamed

Dialogue with Space
Will Barnet

아아, 너무 창피한데 숨을 데가 없다.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는 길은 뻔뻔해지는 것 밖에 없나.

특히 자주 보는 인물일수록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는 자세로, 이해했다 치고 넘어가는 게 그런대로 지낼 수 있게 하는 둥그스름한 사회생활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겠지만 바깥까지 충돌이 표출되는 상황을 모면하려고 억제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정면 충돌을 일으키는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오늘- 

대화로 풀릴 문제에 굳이 인색하게 피해서 좋을 것 뭐 있나. 문제가 풀릴지 안풀릴지 일단 얘기를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느냐, 그럼, 나는 그냥 안다, 통찰력이 오방 있다, 할 수도 없으니 곤란하다. 

결국 터진 악, 소리 같은것을 들어놓고 없던 셈 할 수 없으니 대화같은 것을 시도했...다기에는 첫마디부터 들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런 소리의 목적과 방향이 허공에 흩뿌려진게 아니라 온전히 내 쪽으로, 맞받아쳐지기 위해 쏟아졌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그때부터 영원의 관점은 지탱되지 않는다. 말들은 앙칼지게 충돌하여 추한 소리를 내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날카롭게 꽂힌다. 

결국 첫마디 보다 두 배쯤 큰 소리였던 끝마디이자 결론으로 알아들은 것은, 나와 얘기하는 건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시작부터 내가 하고 싶던 소리였다. 언제나 꼭 이렇게 끝까지 해봐야 시간낭비라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닐거라고. 

본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지금, 당장, 바로, 본인을 다시 생각해 달라는 건 떼쓴다고 되는게 아니다. 적당한 때와 장소가 있다. 더군다나, 사람이 어떠한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문제는 시간이 조금씩 천천히 일러주는 것이지 (한 순간에 들통나는게 인간성이라고 했던게 바로 어제다!) 수군수군 일회적인 말로 절대 증명될 수 있는게 아니다,고 한다면 너가 감히 적당하고 적당하지 않고를 어떻게 미리 넘겨짚고 아느냐 할 수 있는 문제고 그러면 나는 또 적당한 답 말하기에 실패하고 길게 한숨을 쉬겠지만. 나를 얼마나 맘에 들어하느냐 안들어하느냐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냥 나를 얼마든지 싫어해도 괜찮으니 이런 소음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그러는가 하면 새우들이 배배꼬이고 있는 동안 옆에 있던 고래는 하늘을 난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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