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자꾸 쏟아졌다 말다 하지만 지나치게 건전하기만 해서 건조한 토요일이 되는가 싶어 오랜만에 심야영화를 보러갔다. 축축한 여름밤 집복 차림에 두유 그린티 머시기 프라푸치노에 휘핑을 잔뜩 얹어 손에 들고 옆동네 마드모아젤과 나란히 앉아 아이큐 네자리인 캐릭터를 구경하는 것은 썩 괜찮은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영화관에서 나오는 동시에 느껴지는 리얼리티는 바로 전 두 시간 남짓동안 익숙해졌었던 삶의 속도보다 약 백 오십분의 일로 주욱- 늘어난 필름같았지만, 또 그래도 어떻게 세 자리를 간신히 넘어준 아이큐를 얼싸안고 차에 올라타며 어줍잖게 "괜찮네."라고 덜컹 던져놓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것이 어쩐지 존재 가치에 있어서 강등된 기분이지만. 이미 취침 시간을 훨씬 보내놨기에 얼른 이 몸을 침대에 눕혀줘야 하는 다급한 의무감 같은 것이, 일단 마냥 건조하지만은 않은 토요일을 만들었다는 것에 거의 만족하게 하고 나는 이제 램프 스탠드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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