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부터 예술의 전당에 앉아있었다. 멘델스존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두 번 연속으로 보고 났더니 진이 다 빠져, 누가 몇 등을 하는지까지는 별로 보고싶지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앉아있었다. 일본 아이가 일등을 하고 러시아 사람이 이등을 하고 개인적으로 좋은 연주자라고 생각했던 이지윤과 중국 사람이 공동 사등을 하는 것 까지 보고 일어났더니 일곱 시다. 약 이십분 동안 서울 시장과 동아일보 사장 이름을 한국어와 서투른 영어로 열 두 번 반복해서 듣는 기이한 체험을 해서 그런지 집에 오는 길에 현실 감각이 기우뚱했다. 내일은 월요일이니 일단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것이 관건이다. 좀 더 버티라는 의미로 17번 Orchidée를 사주었다. 입술을 바를 때마다 시간을 멈춘다. 다른 때와 다른 집중력과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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