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rian Ferry |
어제 퇴근 무렵
무려 두군데에서의 유혹적인 제안을 마다하고
동네에 와서
엄지 손가락을 자주색으로 칠했다.
장을 보고
집에와서 고기를 구었다.
때아닌 샴페인과 같이 일본 영화 '안경(めがね)'을 보았다.
마침 어제는 Le Clézio의
Celui qui n'avait jamais vu la mer
를 읽었더랬다.
바다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David라는 조용한 아이가
어느날아침 학교에 나타나지 않고 바닷가로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David는 글 속으로도 사라져 어느샌가
'그'라는 대명사도 나오지 않게 되고
대명사 'nous'로 우리 얘기를 하고 있게 되는 그런 책이다.
어쩌다보니 집어드는 것들이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다.
여튼 영화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할머니가 냄비의 팥이 다 익을때까지
그 앞에서 숙연히 기다리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가스렌지 불을 끄고
'중요한 것은 조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과
다섯 인물이 각자 널찍히 떨어져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하는 중
한 청년이 난데없이 독일어로 이런 시를 읊는 장면이 특히 그러했다:
Mir ist bewusst was Freiheit bedeutet
Folge dem Wege geradeaus,
meide die Tiefen des Meeres,
doch hab ich solch Wort hinter mir gelassen.
Der Mond scheinet auf jedem Wege,
wie die in der Dunkelheit wie Diamanten schwimmenden Fische;
heiß wie durch Zufall Mensch - und hier bin ich.
Was hatte ich zu befürchten,
mit was zu kämpfen,
bald ist es Zeit die Lasten zu legen.
Erteile mir noch mehr Kraft,
Kraft zur Liebe.
Mir ist bewusst was Freiheit bedeutet,
mir ist bewusst was Freiheit bedeutet.
Peter Härtling
길을 똑바로 걸어라.
깊은 바다에는 다가가지 말도록
따위의 그런 당신 말은 팽개치고 왔다.
달빛은 어느 길에나 쏟아진다.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석과 같다.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우며 이곳에 있는 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과 싸워왔는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짐을 내려 놓을 즈음
좀 더 힘을
부드러워 질 수 있는 힘을.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저기 'durch Zufall'라는 부분만 빼면
더 좋겠다.
일본 특유의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영화나 책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예의 바름.
조용한 정갈함.
개인 세계의 동떨어짐.
같은 데에서 오는 어떤 미적 요소를 생각하다가
문득 얼마전 일본에서 지내다온 A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A는 그때 그들의 속을 당최 알 수가 없다고 혀를 내둘렀더랬다.
그들이 자기의 티셔츠를 칭찬할 때면
'바지가 뭐 그따위냐'라고 말하고 있는거라고.
어떨 때는 바지인지 구두인지 헤어스타일인지 알 수 없게
너무 멀리까지 빙빙 돌려 얘기하는 것을 따라가는게
지친다고.
좋은 사람, 좋은 여자
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여자는 최근
'왠만하면 짝발로 서있지 않기'와
'집중하지 않는 중엔 ㄴ자로 누워 앉거나 다리 꼬지 않기'
를 연습중이다.
(지금은 당연히 다리를 꼬고 있다.
어떤 사소한 문장이라도 말이 되게 문자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어떤 다른 일보다 더 많은 주의와 집중이 요구된다.)
어떤 인상을 만들어내고 싶다기 보다는
다소 인위적인 신체적인 자세가
원하는 특정 정신적 모드를 효과적으로 시동걸어주는
그런게 있기 때문이다.
음. 오늘은 또
끝내긴 무리인 책과
시작하면 좋을 책과
다듬어야 할 문서와
정리할 지난주 일기와
사면 좋을 티셔츠 하나와
탐닉하게 될 악보와
요리되길 기다리는 재료들과
어제 마시다 만 샴페인,
물어보고 구해질 기도제목들과
그밖에 이러저러하게 채워질 시간과
그닥 중요하지 않으면 좋을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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