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2011

Films and Books

Arm of the Seine Near Giverny at Sunrise
Claude Monet


Films watched in July:

Annie Hall (1977)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8)
Life is Beautiful (1997; revisited)
Incendies (2010)


Books read in July:

Feed by M. T. Anderson

이 달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저것 하나다. 유독 책보다는 피아노 악보를 많이 본 달이다. 같이 집어들었던 Le Clezio의 Révolutions은 아직 몇페이지가 남았고 부피와 무게를 자랑하는 Diarmaid MacCulloch의 A History of Christianity는 십분의 일 가량이나 읽었을까. 막 흐름을 타려는 때에, 이런 읽고 싶은 것들을 접어두고 넉달 안으로 적어도 두번은 읽어줘야 마땅할 SchweserNotes가 나타났다. 당분간 시간을 채워 보내는 구실로 가장 적당한 일감이다.







7.30.2011

Ou Ailleurs

Alfalfa Fields, Saint Denis
Georges Seurat



je pourrais être ici, ou ailleurs.




7.29.2011

8.3

A Girl in the Woods
Vincent van Gogh


호기심이 일으킨 평소보다 빠른 두뇌 활동으로 이번 주 내내 용케 유지되던 분주함과 그에 따른 적당히 들뜬감정이 오늘 오후 다섯시쯤 갑자기 닥쳐온 강도 8.3의 외로움으로 테러를 당했다. 예고없이 맥이 탁 풀린 그로부터 아홉시가 다 될 때까지 광화문 어딘가에서 촛점 없는 눈으로 먼산만 바라보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
there is a loneliness in this world so great
that you can see it in the slow movement of 
the hands of a clock

people so tired
mutilated
either by love or no love.

people just are not good to each other
one on one.

the rich are not good to the rich
the poor are not good to the poor.

we are afraid.

our educational system tells us
that we can all be
big-ass winners

it hasn't told us
about the gutters
or the suicides.

or the terror of one person
aching in one place 
alone

untouched
unspoken to

watering a plant.



- Charles Bukowski




7.28.2011

Overtime



처음으로 야근을 했다.
7시까지.
아이피곤해.
우두둑 (척추 펴는 소리)




7.27.2011

Asking Without Fear

An Interior After Dinner
Claude Monet


"If there are no stupid questions, 
then what kind of questions do stupid people ask?
Do they get smart just in time to ask questions?"

-Scott Adams



타인에게 멍청하고 모자라 보일수도 있는 가능성에 개의치 않는것. 두려워하지 않고 물어보는 것. 수사학적으로 재능이 있다면야 그런것들은 더욱 편해질 수 있지만. 편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것을 이런식으로라도 저런식으로라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왔다갔다하면서 물어보는것. 되도록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 당최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를 모르겠다면 일단 말이 되게끔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할 것. 앞에 놓인 타스크 자체가 완전히 이해가 안가는 상황에서 논리가 있게 물어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혼자 끙끙거리는 시간이 아예 없이 바쁜 사람들에게 매달려 쉬운 답만을 원하고 있는 것도 주변 머리가 없는 거겠지만 물어보지 않는 것 보다 낫다. 물어보면 멍청해 보이겠지 그 특정 컨텍스트에 있어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수준이 들어나 비웃음을 사겠지 겁을 집어먹고 오히려 한심스러울정도로 오랫동안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아무리 작은 정도의 관심이라도 반짝 빛나는 즉시, 사라지기 전에. 게걸스럽게. 공격적으로 배우는 것.

어느정도의 뻔뻔함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참 설명해줄 때 다 알아듣는 것처럼 그래그래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고마워. 근데 있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질문해도 돼?" 와 "근데 있잖아 내가 또 물어볼건데 귀찮겠지만 그냥 나를 다섯살이라고 생각해"는 습관적인 대사가 되어버렸다.

일관성있게 긴박하면서도 그것을 차갑게 식혀가지고 다녀 불안하지 않는 것. 적당한 거리를 두어 가볍게 다니면서도 작은 디테일의 차이도 알아차리는 것. 진실된 감정에 너그러우면서도 침착하게 매달리지 않는 것. 가능한 일인가.



7.26.2011

Enough




하여간 비가 많이도 오고 퇴근길 정체로 집에오는데 버스안에서만 2시간 반을 앉아있었더랬다. 빽빽히 서서가는 분들에게는 어쩐지 편히 앉아 가는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때아닌 풍족함을 느겼다. 마침 팬트리에서 챙겨가지고 나온 과자로 심심한 입을 달래고 녹차로 갈증도 해소하고 비는 철철오고 옷은 많이 젖었지만 아이폰에서 셔플로 돌아가고 있는 음악은 하나같이 좋고 소설책도 하나 있고 오늘 따끈하게 나온 Bloomberg Businessweek도 있고 (사진은 지난주) 입술이 마를때 바를 수 있는 립밤도 있고 해서 피곤한지도 지루한지도 모르게 편안히 집에 잘 왔다.

잡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잡지는 표지는 물론이고 내용물의 디자인이 특히나 꾸준히 훌륭하다. 블룸버그 잡지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들어 블룸버그 터미널, 그 시스템의 논리와 질서가 주는 매력에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의외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어쩌면 충분히 즐길 수도 있을 듯 싶다.   



7.25.2011

Perirrhanterium

Agapanthus
Claude Monet



14

Fly idleness, which yet thous canst not fly
By dressing, mistressing, and compliment.
If those take up thy day, the sun will cry
Against thee: for his light was only lent.
God gave thy soul brave wings; put not those feathers
Into a bed, to sleep out all ill weathers.


25

By all means use sometimes to be alone.
Salute thyself: see what thy soul doth wear.
Dare to look in thy chest; for 'tis thine own:
And tumble up and down what thou find'st there.
Who cannot rest till he good fellows find,
He breaks up house, turns out of doors his mind.


28

Yet in they thriving still misdoubt some evil;
Lest gaining gain on thee, and make thee dim
To all things else. Wealth is the conjurer's devil;
Whom when he thinks he hath, the devil hath him.
Gold thou mayst safely touch; but if it stick
Unto thy hands, it woundeth to the quick.


44

Envy not greatness: for thou mak'st thereby
Thyself the worse, and so the distance greater.
Be not thine own worm: yet such jealousy,
As hurts not others, but may make thee better,
Is a good spur. Correct thy passions' spite;
Then may the beasts draw thee to happy light.


52

Be calm in arguing: for fierceness makes
Error a fault, and truth discourtesy.
Why should I feel another man's mistakes
More than his sicknesses or poverty?
In love I should: but anger is not love,
Nor wisdom neither: therefore gently move.


54

Mark what another says: for many are
Full of themselves, and answer their own notion.
Take all into thee; then with equal care
Balance each dram of reason, like a potion.
If truth be with thy friend, be with them both:
Share in the conquest, and confess a troth.


71

Let vain or busy thoughts have there no part:
Bring not thy plough, thy plots, thy pleasures thither.
Christ purged his temple; so must thou thy heart.
All worldly thoughts are but thieves met together
To cozen thee. Look to thy actions well:
For chuches are either our heav'n or hell.


76

Sum up at night, what thou hast done by day;
And in the morning, what thou hast to do.
Dress and undress thy soul: mark the decay 
And growth of it: if with thy watch, that too
Be down, then wind up both; since we shall be
Most surely judged, make thy accounts agree.


77

In brief, acquit thee bravely; play the man.
Look not on pleasures as they come, but go.
Defer not the least virtue: life's poor span
Make not an ell, by trifling in thy woe.
If thou do ill; the joy fades, not the pains:
If well; the pain doth fade, the joy remains.




- George Herbert, 1593-1633





7.24.2011

Diversified Investments


The Long Leg
Edward Hopper




오전에 무심히 한 헷지 펀드 매니저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예기치 않게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된다. Ray Dalio는 지난해 Forbes 지에서 55번째 재벌로 꼽힌 사람이란다.

모든 것이 "machine"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느 기자가 비꼬았던 것처럼 그가 추구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Ayn Rand의 소설에나 등장하는 감정이 배제된 '완벽한' 인간상인듯 하지만 "Pain + Reflection = Progress" 이라는 그의 포뮬러를 반영하는 "our greatest power is that we know that we don't know and we are open to being wrong and learning"같은 말에는 공감한다. 'success'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실수를 가감없이 인정하고 그자리에서 왜 그것이 실수였는지를 짚는 연습. 감정때문에 발전의 기회를 더디게 하거나 놓치지 않는 연습 같은 것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프로젝트에 있어 긍정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겠다.

"What we're trying to have is a place where there are no ego barriers, no emotional reactions to mistakes... if we could eliminate all those reactions, we'd learn so much faster"

그 사람 면전에 대고는 하지 못할 것 같은 말은 어디에서든 꺼내지 않는 것. 그런데서 얻어지는 투명성.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말이 안되는 것 같은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하는 것. Radical transparency. 그러는 동시에 인간은 완벽함이 아니라 실수하는 데에서 비로소 인간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졌다. 탁월한 연기나 자기방어로 인해 그닥 흠을 찾을 수 없는 사람보다 일반적으로도 하자가 있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처럼.

미심쩍은 부분:

1. "Creativity comes from open-mindedness and centeredness - seeing things in a nonemotionally charged way". 어떤 감정이 생겨야 뭐든 자발적으로 하게 되지 않나. 나는 그런 것 같은데.

2. "Constantly worry about what you are missing. Even if you acknowledge you are a 'dumb shit' and are following the principles and are designing around your weaknesses, understand that you might still be missing things. You will be better and be safer this way."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말그대로 끊임없이 걱정하는 것은 이미 걱정스러운 default 모드이다.

6년 전쯤 일할 때 분산 투자라는 말은 'Don't put your eggs in a single basket'이라는 문장과 함께 지겹게 들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 6년 간의 내가 보낸 세월을 돌아볼 때 이것저것 맛만 보고 특정 장르나 분야에 완전히 몸을 담그지 못하는 내 가벼운 유랑기를 스스로 탓하기만 했지 그것이 어떤 형태로의 전략 따위가 될 것은 바라지도 않았었다. 학교 다니지 않는 동안은 계속 어딘가에 적을 두고 일해왔어도 내 CV의 절대적 인상인 '진지한 경력 없음' 자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없다는 것에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아주아주 관대하게 본다해도 과연 '분산투자'라는 은유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수확의 때가 다소 멀어보인다는 것은 괜찮다. 위에서부터 내려온 내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의식적인 결정과 선택에 의해 계란들이 안 깨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잦은 이직과 이 장르와 저 장르를 옮겨다니는 탓에 이젠 진지하게 '일한다'는 말이 무색하여 '프로젝트'가 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어감을 더 선호하고 있는데 이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Dalio가 그의 펀드와 투자 방식을 설명하면서 "I'm always trying to figure out my probability of knowing... Given that I'm never sure, I don't want to have any concentrated bets."라고 말하는 부분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들었다.

"It's always a matter of controlling risk. Risky things are not in themselves risky if you understand them and control them. If you do it randomly and you are sloppy about it, it can be very risky."

그가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라면 나는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이미 가지고 있는 변할 수 없는 어떤 자산이 있는데 이것이 나의 전자산이고 이미 벌어진 진정한 의미의 수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게 될 경우 '위험'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어지게 되므로 나는 스스로를 번복하는 셈이 된다. 음 아마도 다른 수준의 위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던지. 둘 중 하나에 있어서는 뭔가 다른 단어가 선택되어야 한다. 잦은 이직의 이유였던 '위험'이 뜻하는 바는 삶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경험과 사람들과 관련된  'my probability of knowing'의 일부를 놓치는 것을 의미할 테고 내 raison d'être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위험'은 그것 없이 나는 완전히 패배한 것이고 그것의 상실로부터 절대 회복될 수 없는 것. 그것 없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런 종류의 위험이라 할 때 앞의 위험은 그리 진지한 위험은 못된다.

여튼 조건은 "outperform the market consistently". 내 맘대로 해석하면 꾸준히 평균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의 퀄리티에도 있다.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항상 평균 이상 하는 지적, 감정적, 심리적, 영적 상태의 유지.

평균 이상 하는 것이 몇가지나 되는지, 있기는 있는지,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몰라도. 어쨌든 그랬다.

7.23.2011

A Poetic Heart





Though thou with clouds of anger do disguise
Thy face; yet through that maske I know those eyes,
Which though they turn away sometimes,
They never will despise.



John Donne (1572-1631)






7.22.2011

A Lesson


Black and Red
James Abbott Mcneil Whistler 


역시 동의하지 않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처음부터 딱 잘라 거절하고 가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나중에라도 켕기는 것 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누군가가 두렵거나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당시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모면하고자 하는 짧은 생각이었겠지만. 니말이 맞다는 추임새 하나라도 아섰을 것을.

앞으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오늘은  글로,  또 말(은 별로 원하지 않았지만 그쪽에서 원하셨기에) 로 생각하는 바를 전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무척 상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런말을 쓰고 하는 와중에 상대가 그닥 밉지 않았던 것.

나도 말을 곱게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수긍한다. 스스로 요구하는 기준에서 그제 흘린 말은 매우 추한 말로 인정하고 또 반성한다. 그렇지만 그것 말고 지적하고 있는 듯한 특정 냉소적인 말들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 같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감정을 상하게 하더라도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것 같다. 그래서 뭘 지적하고 증명하려는 것 같긴 한데 뭘 지적하고 증명하려는 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대꾸를 안하자니 그것도 공격하는 것처럼 되는 상황에서는 무엇을 말해도 썩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것이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그냥 또 그러려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인정하는 셈치고 대충 가볍게 넘어가는 게 더 나은 것이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는 아직도 잘 모른다고 하고 있다. 갈등보다는 평화를 추구할 것이 마땅한 지혜로운 사람들은 지혜롭게 행동하겠기에 그들이 말하는 지혜가 요구하는 관용과 인내, 침묵의 정의를, 적용범위를 알고싶다. 그렇지만 애초에 갈등과 평화는 반대급부가 아닐 수 있다.

오늘도 배운다. 내 한계. 어려운 인간관계. 삶의 뻔하지않음.

Incendies




기다렸던 영화. 오늘 씨네큐브에서 개봉. 퇴근하자마자 가서 보았다. 더 오래 기다리고 있었더라도 충분히 그동안의 기대와 가치를 채워주고도 남았을 영화. 한 컷 한 컷이 예술이다. 주된 배경이 되는 지역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딘가 모르게 영화 Babel을 연상시키지만 (아마 영상과 음악의 조화 면에서) 그보다 한층 절제된 영상미와 플롯의 유기성이 있다. 이 영화의 플롯은 아 정말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은 충격과 전율이다. '극적 반전으로 끝나는 결말'이라는 식상한 프레이즈에 들어가는 어떤 단어에도 충실하게 해당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번 심장을 쓸어내리게 한다. Mélissa Désormeaux-Poulin이라는 낯선 이름의 여배우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예술적인 마스크를 가지셨음에도 (특히 그 빠져나올 수 없는 눈망울이란!) 이 배우와 어머니 역의 Lubna Azabel의 연기에 브라보. 브라보.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조 역시 매우 감각적인데 전혀 젠체하지 않는 정제됨이 있다. 아 음악이 빠질 수 없는데 음악 역시 극 절제되어 아주 조금만 쓰였는데 그 선택들이 다 과감하면서도 동시에 갖추기 어려운 탁월함이 있다. 특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음악은, 엄, 씨네큐브는 원래 끝까지 불을 안켜줘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게 한다. 하필이면 마지막 그 음악이었기에 집에 오는 버스안에서도 서울 밤거리를 내다보며 한참 영화 주위를 맴돌게 하는 효과있었다. 삶의 절박함과 강렬함이 왜 저기에는, 거기에는 있고 여기에는 없어보일까. 말 그대로 없어 보일 뿐인거겠지. 더 많이 알게되고 집중하면 나도 모을 수 있는 그런것인가. 이런 생각들의 저변으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끝없이 올라간다. 안그래도 압도적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왜 압도적인지가 이해가 되는 첫 장면을 누군가 올려놓았다. 트랙 넘버가 4번까지 있을까 말까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1번으로 음악 감독이 과감하게 선택한 것은 Radiohead의 "You and Whose Army?"이다.


7.20.2011

A Regret

After the Rain at la Roche-Guyon
Auguste Herbin



아주 잘못한 일이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웃고 있으면서 필요없는 긴장과 목적없는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 어떤 추한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뭐든간에 욕심, 집착, 거만함, 두려움과 다 관련이 있을 게다. 오늘 그런말과 그런 마음가짐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추하고 싫었다. 말을 하는 동시에 속으로 놀라고 실망스런 '악'소리를 냈던것 같다. 역시 사람 됨됨이는 그렇게 한 순간 드러나는 법이다. 결국 남얘기는 내얘기를 한참 착하고 순하게 한 것이었다. 더 싫은 것은 내가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 어떤 특정한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든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이런 옹졸한 작은 버블에서 벗어나 나는 언제 쫌 '됨'되려나. 많이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몇번 이런 나를 더 만날 때마다 더 격하게 반성하고 그러면 그런 주기도 길어질 테고 하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7.18.2011

Argh,




오늘 아침 하늘. Being easily offended is a sign of pride라고. 남이 어디로 가는지의 행로가 그렇게 매사에 결정적으로 자기 입지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디 마음 편할 날이 있겠냐고. 남이라도 발전해야 용기도 얻고 자극도 받아 자기도 더 잘하려고 그러는거 아니냐고. 쓸데없이 심술은. 모른척 할래야 모른척할 수도 없게. '너보다 내가 먼저할거야' '너보다 내가 잘될거야'같은 좁은 동기로 몰아가는 아슬아슬 피곤한 경쟁 말고 '우리 모두 불안하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어떻게 좀 잘해보자' 이거 안되냐고. 좀 윤리 교과서 같은말이라 오그라들지만. 그런 것쯤 그냥 오그라들자고. 뭐 나도 말은 쉽지만. 어쨌든 그게 더 밝고 건강한 것 맞잖아. 초등학교 바른생활만 그대로 연습해도 그게 어디냐고. 아 진짜. 별걸다가지고.

7.17.2011

Eden

Apple Trees at Pontoise
Camille Pissarro




에덴 같은 데서 그대와 즐겁게 뛰어노는 꿈을 꿨는데 말입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에덴 비슷한 곳이 맞을 겁니다. 하하 이 나이에 그게 다 무슨 유치함인지 말입니다. (아니면 이나이라 그런 식상함인지 말입니다.)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니 그대가 아니라 어떤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모르고 불확실한 것이 대부분의 내용이니 가볍게 더 세월을 담아보도록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멀쩡한지 말입니다. 점점 더 희미해지기는 하는데 자꾸 생각이 오니 더 부풀기 전에 이렇게라도 상스럽게 뱉어버리는게 낫지싶지 말입니다. (에, 더 나은 것이 아닐 수도 있지 말이십니까. )

Lost & Found








어제는 뭐라도 기록을 남길 요량으로 이것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닫아버렸다. 오전에 발가락을 색칠하기 위해 잠깐 외출한 것 외에 하루종일 젖은 빨래마냥 비스듬히 침대에 앉아있거나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오전에 꽤 바지런히 움직이고 말도 좀 입밖에 냈기 때문에 머리속에도 꽤 동하는 것이 있었다.  열두시 반쯤 파리크라상의 좋아라하는 올리브 부메랑 빵을 좀 사서 스타벅스에 가 갓내린 커피와 함께 책을 펴들고 있으려니 한시간의 휴식이라도 앞으로 며칠 더 출근을 가능하게 하기에 충분한 격한 휴식이었다. 두시반 쯤 일어나 정자역에서 이매역로 갔는데 출구에서 패닉했다. 지갑이 없었다. 아 또 일년을 못가 잃어버리는구나. 지하철이 자주 다니는 시간대도 아니니 몇 분 전에 정자역의 누군가는 얼씨구나 하고 삼켜버렸겠지. 악. 또 카드들을 무효화시키고 새로 신청하고 할 것을 생각하니 귀찮음과 피로함이 우르르 몰려온다. 지난번 지갑을 잃어버리고 아직까지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 응. 그대로 몇분만 더 있었어도 더 많이 포기했을 텐데 아직은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더 강했던 때라 이매역 출구의 HELP버튼을 여러번 누르고 고객상담실에 가서 격한 손동작으로 나른한 일요일오후를 보내고 있던 분당선 직원 여러분들을 한방에 긴장시켰다.  정확히 몇번째 칸에 탔었는지 어디에서 지갑을 빠뜨렸는지 내가 알리 만무한 질문들을 반복해서 여러번 물어보다가 포기하시고 일단 내가 출발한 정자역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해주셨다. 그리고서는 다시 내가 몇번째 칸에 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시는 동안 5분정도 지났을까. 정자역에서 전화가 왔다. 아저씨가 전화에 대고 "찾으셨다고요?" 하시는 순간 생각같아서는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5미터쯤 공중점프를 했음직하다. 180도 달라져 행복해 죽겠다고 말하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직원들도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진심을 담아 너무 감사하다 심하게 수고하신다고 연신 굽어 인사하며 다시 정자역으로 향하는데 비록 예배시간은 늦었지만. 뭐랄까. 겨우 지갑 하나가 연루되었을 뿐인 사소함이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그런 장엄함. 내 작은 '아!' 소리도 무시되고 있지 않다는 그런 느낌.  그런 디테일까지도. 그러는 한편 나는 얼마나 또 가볍고 쉬운지. 흐흐. 여튼 그래가지고 오늘도 그렇게 드라마틱하다는.

7.15.2011

MDS; I am the Remix




8:28pm 
Esther: MDS앨범자킷에오빠는없는데 

8:37pm
Bjorn: 음.. 오른쪽이 난데...

8:39pm
Esther: 아.. 연예계가그런거구나

8:39pm
Bjorn: 응?




저녁때 받아든 택배 포장을 뜯으며 보낸 카카오톡. 자킷 안쪽의 사진 중에서 어떤 청년의 입주변이 살짝 U자를 엎어놓을까말까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조금 설득이 되었다. 지난 여름 낯을 알게된 미스터 서에게 계몽이 된 덕분에 티비나 라디오 안듣는 나도 '석봉아'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들이 온다'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정자동의 투썸과 톰톰을 오가며 그의 차안에서 들어봤던 원곡이다. 그 외 이 앨범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내 어찌 논하랴. 지금껏 본적없는 양적 길이와 정교함이 인상적인 핫트랙 앨범소개에 대신 맡긴다: "훌륭한 자양분이자 상큼한 청량제". 이런 말은 전혀 감이 안잡히지만 좋은 평임에는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멜로디나 가사 없는 마지막 트랙 '재회'가 좋은데 이것도 원곡이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7.14.2011

Everyone's Fine




오후 5시 반에서 6시 사이
광화문에서 잠깐 보였던 광화문 날씨.




몇 달전까지만해도 마이원앤온리였던 그녀는
2주 안으로 새 가족이 생긴다.

옆동네 어여쁜 마드모아젤은 
다음주에 빠리로 휴가를 간다.

윤롯데는 오늘밤 비행기로
여자친구와 함께 2주 동안 이탈리아에 가있는다.

진짜 음악을하고 진짜 앨범을 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던게 얼마안된거 같은
dj bjorn은 이번주에 진짜로 판을 냈다.




그런것과는 동떨어지게.

어제는 저녁때 버스 번호 잘못 보고 탄 것을
한시간후 강남 한가운데 가서야 알아차리고
오늘 아침 알람소리를 못들어 30분을 지각하고
오늘 저녁 버스 정거장에 서있으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 나머지
집에가는 버스를 두 대나 그냥 보냈는데
마침 남산터널에 불이나 한참을 뺑뺑돌아
평소보다 집에 한시간 반이나 늦게 들어왔는데도
'그럴수도 있지'도 아니고
'그럴줄 알았다'는 듯
신경 하나 곤두선 것 없이 모조리 누워있어
 너무나 태평한, 
회사 집 회사 집이나 왔다갔다 하며 앉아있는 내가 
괜히
흐뭇하고 설렌다.

마음이 어떻게 참 좋다.






7.13.2011

Make Peace

July Night
Frederick Childe Hassam




아침에 출근하면서
'내 마음은 호수요'에 근접했던 상태에
투박한 바위를 첨벙하고 던져 더이상 고요하지 않게 한 사람이 있었다.
옆옆 건물 보보스빌딩 관리아저씨.
평소처럼 분당구청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기전
그 건물의 정문과 후문을 통과하려는데
아저씨가 뒤에서
"아가씨!"
하고 부른다.


"아가씨 맨날 이 길로 다니는데 여기로 다니지 마요!
여기 길 아니야!
건물 밖으로 돌아서 다녀요!"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혹시 잘못 들은게 아닌지 
눈을 정지시키고 아저씨를 봤더니
아저씨는 할말을 다했고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이었다는 듯이
이내 내가 서있는 방향에 관심을 끊고
원래 하던 것을 계속 하셨다.


또 한번 상식의 선이 오른쪽으로 기우-뚱 하는 것과
다섯개 쯤의 말풍선이 동시에 머리 뒤로 슉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한 2초간 내가 서있던, '길이 아니라는' 바닥을 멀건히 쳐다보았다.


방금 길이 아니라고 하신 같은 문장에
이것은 길이다라고 먼저 명시하시지 않으셨냐고.
열발자국도 안되는 이빌딩 정문과 후문 사이를 제가 드나드는 것이
아저씨를 방해하느냐고
아님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방해하냐고.
세탁소와 편의점이 있는 1층은 누구나 사용하는 공공장소가 아니냐고.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법.
생각이 '법'에 이르자 멈칫했다.
내 기준과 상식에 의심이 들고
실제로 그런 법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기억을 빠르게 뒤지는 동안 
법을 전공했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 둘씩 지나갔다.
기억의 끝에 이르도록 걸러져 나온 이름들은
모두 아는 척하기에는 이제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거나
전화 번호를 모르거나
뻔뻔하게 몇 년 만에 전화하는 구실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


아니면.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에서 몇 개 단어만 좀 두드리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구별될텐데.
그가 극단적인 것인지 내가 너무 편의만 추구하는 
무른 인간인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텐데.
내용을 출력해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다음에 또 아저씨가 부르면
보란듯이...



정확히 어디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모르게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합리적으로 자기 것은 챙길 줄 아는 여자.
아닌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요목조목 따지고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말하는 여자.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여자.

그런 모든 여자들이 실없고 피곤해졌다.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이 그렇듯
맞고 틀리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정의의 구현만으로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어낸 자유와 평등은 어쩐지 차갑기 그지없다.


최악이라고 해봤자 기껏 1분 정도 돌아 걸어가면 되는 일가지고
법을 기준으로 상식을 구분할 정도로
시시콜콜해질거 뭐 있나.
(그러면서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글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과장된 표현이다.)



가장 좋았을 뻔 했던 것은
마치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정도의 험블한 마음으로
그 건물을 통해서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매일 아침 관리아저씨에게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고
아저씨는 인사를 받아주시면서
내 출근길 1분을 헤아려주시는 버전이다.


이것들 중 아무것도 일어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변하기 어려울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그 불편한 심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역시나 변하기 어려운 내 마음을 이어서 불편하게 하는 대신
그냥 집에서 1분 일찍 나와 
통과해 다니던 건물을 돌아서 다닐 듯 하다.







그러면서 이 내용에는 
Pat Metheny와 Brad Mehldau의 Make Peace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인양 떡 올려놓는,
이 지칠 줄 모르는 단순함.
그것을 때마다 지적하고 비웃는 예민함. 
그래서 앉아만 있어도 피곤한 여자.
딱히 이 여자를 흔들어놓는 바깥 상황같은 것도 없어서
거울 두 개를 맞대어 놓고
그 속에 끝없이 펼쳐진 자신의 피곤한 모습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도 역시.
과장되었다.

들여다보는 것 말고도 
위를 올려다보기도 하니까.









7.12.2011

A Habit





We are what we repeatedly do.
Excellence is, then, not an act but a habit.


- Aristotle




습관이란게,
그런거.



아침 7시 40분쯤
시나몬 베이글의 질감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크림치즈를 바르는 동안 
어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낀 것 외에
하루종일 무얼하고 무얼 느꼈는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 하하.





7.11.2011

En Rêve





Flowering Apple Trees at Eragny
Camille Pissarro






지난 밤 꿈에.








7.10.2011

Retreat





1.

거의 호기심과 실험 정신으로 참가했던
지난 2박 3일 여정.
한번도 해보지 않은  어떤 것을 
의식적으로 해보는 데에서 오는 것은
흥미롭게도 
기대에 부응하거나
부응하지 못하는 데에서의 
만족이나 실망감보다는
아직 뚜렷하게 문자화 되지 않았던 
의식 속에서의 많은 체크리스트중 하나가 더
v자로 표시되었다는 데서 오는 작은 성취감에 가깝다.
나의 경우, 뭐 그렇다.


첫날 부터 잠을 못자서
날카롭고 예리한 정신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라는 것이
이번 여정의 흠이라는 흠이지만
평소에도 그러고 있는 적은 뭐 별로 없는 것 같으니
그 점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2.

꽤 오래 전에
"그래서 너의 하나님은 뭐라시니?"
라고 했던 어떤 이를 위해 아직도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와 관계 있고 없음을 떠나서.
나와 관계 있고 싶고 없고 싶음을 떠나서.

3. 

평소 관심 분야나 취미 생활, 살아온 배경, 직업적인 관점에서
이보다 더 다를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어떤 것을 공유할 때
고맙게도
내 각지고 모난 부분들은 기꺼이 용서가 되는듯 하다.
이렇게 밝고 환한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것도 어색한데
이를테면 
절대 그들처럼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릴 수 없다고 
자유롭게 우길 수 있다.


내게  내려질 축복이 아직 남아있다면
저 사람에게 그것을 먼저 주시라고
마음 전체를 담아 바란다.
그것에서 오는 기쁨과 감격에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으며 손을 꼭 잡는다.
손에 땀이 차면 내 땀인양 닦아준다.
우리가 일회용이 아니라
저 땅에서도 다시 만나
영원히 아름다움에 취해 살것을 믿는다.
어떻게 이러면서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을 수 있는지는
한참 나중에야 생각이 든다.
진심이 통하고 있는 때에는
오그라듦 자체가 기를 펴지 못하고
오그라드는 듯.



느즈막히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맛본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것은
두 사람 것보다 훨씬 큰 어떤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심장의 박동으로 알게 된다.





4. 

Oh, how He loves me.
Yet, how I hated everything!








He is jealous for me
Loves like a hurricane,
I am a tree
Bending beneath the weight of his wind and mercy
When all of a sudden I am unaware of these afflictions eclipsed by Glory
And I realize just how beautiful you are
and how great your affections are for me.

Oh how he loves us so
Oh how he loves us,
how he loves us so.

We are his portion and he is our prize
Drawn to redemption by the grace in his eyes
If grace is an ocean we're all sinking
So, heaven meets earth like a sloppy wet kiss
And my heart turns violently inside of my chest.
I don't have time to maintain these regrets when I think about the way

He loves us
Oh how he loves us
Oh how he loves us
Oh how he loves....












7.08.2011

Malgré Tout

At the Florist
Frederick Childe Hassam





어제는 저녁밥을 지으면서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끊일날 없는 엄마의 걱정은
이제 공격태세로 접어들어
요즘은 하나님한테 막 따지고 계시단다.

'아니, 쟤 저렇게 그냥 두실 거에요 정말?'

하시는 것이 
귀에도, 눈에도 선하다.
눈을 크게 뜨고 다니라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지만
갈수록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따가워져
점점 전화기가 귀에서 멀어진다.
뭔가 또 억울함 비슷한 것이 생각나신 듯 할 때
나는 괜찮고, 잘지내고 있으니
엄마의 그 조급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라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괜찮다.
잘지낸다.

이를테면 오늘도.



회사에 휴가를 냈기 때문에
아침 아홉시 넘어서까지 모자란 잠을 충분히 자고
분주함 없이 일어나 
머리를 묶고
Bach의 Goldberg Variations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보고
Juliette Binoche와 Daniel Day Lewis가 나오는 1988년 작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을 보면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욕실 청소를 하고,
오전의 연습 덕에 Bach 프레이즈에 더 익숙해진 손가락으로
Chaconne를 한번 쳐본다음
보고 싶은 책 두권을 들고
대한민국에서는 커피빈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써있는
영수증을 주는 시원한 곳에 가 앉아
한시간씩 사이좋게 나눠읽고 들어왔다.
(왜 이리 내 문장은 잘 안끝나는가.
조만간 Hemingway나 James Salter를 읽을 일이다.)



이제 짐을 꾸리고
이박 삼일동안 또 한번도 안해본 것을 하러 갈테다.
청년부 수련회.
찜찜함 없이 청년이라 불리울 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아서.
지난 16년동안 당연히, 자연스럽게 해볼 수 있었는데
꾸준히 피해다닌 덕에 오늘 이렇게 낯설어진 것.
어떤 각오 비스무리한 것이 요구되는 
호기심의 충족.
이 
가는 이유라 할려니까 뭐가 좀 비는 것 같지만.
엄마한테 전화하기 전에 
권장되는 어떤 각오 비스무리한 것과는
다른 것이 확실하다.




괜찮다.
이정도면.




그렇지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싶은 바람은 인정한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어째 써놓고 보니 
눅눅하고 미적지근한것이,
어디에서 백번쯤 봤거나
누군가 천번쯤 했던 말 같다.
젠장.
이것이 진짜 내 바람인지
세뇌된 의식인지 알아내오고 말테다.







7.07.2011

Rain





I went to bed and woke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inking I heard someone cry,
thinking I myself was weeping,
and I felt my face and it was dry.
Then I looked at the window and thought:
Why, yes, it's the rain, the rain, always the rain,
and turned over, sadder still, 
and fumbled about for my dripping sleep
and tried to slip it back on.



- Ray Bradbury





내일 off.
잠을 좀.







7.06.2011

Mark Kermode







Transformers3는 볼 생각도 안했지만
여튼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영화 리뷰.








7.05.2011

aA






삼청 aA.


덥지만 저녁때는 에어컨없이도 꽤 견딜만한 이맘즈음,


대부분 말하기 모드로 default되어 있는 듯한,
유난히 여자들 하이힐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계 미국인과
항상 긴셔츠를 입는 것과 어울리지 않게
약간 경사진 안경을 쓰고 
오늘따라 유난히 듣기 모드로 앉아있던 프랑스인과
날이 어두워지기 전부터
저렇게 달이 보일무렵까지
유럽식이라는 테라스에서 가벼운 화이트와인을 
하고 있으려니
나는 또 아무 공간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나이도 태생도 잊고 낯설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앉아
어떤 대화라도 하자면,
어떤 긴 구불구불한 의식의 통로를 지나더라도
꼭 자기의 신념을 건드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쉽지만 그렇게 또 
자신을 기억해내고야마는. 








  

7.04.2011

Bach-Busoni Chaconne






퇴근하고 
분당구청앞에서 내릴 즈음은 
거의 매일 이렇게 장관이 펼쳐져 있다.  
오늘은 비대신 오랜만에 빛을 보아 좋았다.


어제도 평소처럼 다섯시간 반정도 
나쁘지 않게 잔 것 같은데
아침 저녁 버스 안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회사에서도 종일 잠과 피곤에 취해 헤롱댔던 것은
어젯밤 Bach-Busoni Chaconne를 연습하는데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썼기 때문인것 같다.










특히 두번째 클립 시작하는 부분은
연주할때마다 눈물이 고인다.
그 때 떠오르는 장면은 톨스토이의 War and Peace 끝부분이다.

그것 말고도 어제밤에는 이곡을 연습하는 동안
어렸을 때 장면들이 많이 지나갔다.
넘치는 자의식을 주체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얼굴이 빨개지던
초등학교 3학년때
Mozart의 변주곡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던 순간,
4학년 때 Schubert의 Impromptu로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피아노선생님이 내 손을 붙잡고 기도해주시던 장면,
5학년 때 Beethoven의 Appassionata로 콩쿨준비할 때
같이 준비하던 중학교 2학년 언니가 Emperor Concerto 치던 것을
몹시 질투했던 내 씰룩이 볼.



오늘도 Accu Radio를 듣다가 Mendelssohn의 어떤 곡이 좋아서
혹시나 하고 뒤져보니 역시 내 맥북에 들어있다.
그는 그때 자그마치 6기가 가까이의 악보를
덜렁 그렇게 넘겨주었다.
그리고서 우리는 너무 신경질적으로 조급하게
다시보지 않을 것처럼 인사해버렸다.
내 인간관계 점수는 마이너스 두자리다.
그 때 이 악보들을 덜렁 받아들고
물론 고맙다고 말하긴 했겠지만
설마 내가 이렇게 두고두고 오래도록
고마워하고 고마워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때 이 악보들을 덜렁 받아들고
어느 정도 충분히 흘렀던 시간을 살아내지 않고서는
이것이 쳐도쳐도 끝이 없는 엄청난 분량의 악보인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렇지.
이런식이지.




그렇게 오전에 졸다가
윤롯데와 회사 근처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다음주? 다음달에 여름휴가로
여자친구와 같이 이탈리아에 10일정도 가있는댄다.
좋겠다 싶다.
막 부럽진 않고.
한 일년 살러 가는 거면 부러울텐데.
아니면 같이 가는 사람이 부러울까 말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윤롯데의 여자친구는 사귄지 몇년이 되어도
어찌나 귀하신 몸인지 당최 보여주질 않아서
어떤 인물인지 알 수가 없으니 안부러워지는게 어쩐지 더 쉽다.
여튼 윤롯데와는 조만간
막 날이 어두워지려고 할 때
회사앞 파리크라상이나 아티제에서 팥빙수를 먹기로 했다.






7.03.2011

Body and Soul






You don't have a soul.
You are a soul.
You have a body.



- C. S. Lewis










7.02.2011

Life as Music





오늘 낮에 
슈만의 콘체르토와 쇼팽 발라드 4번을 치다가
한달도 더 전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Virginia Woolf의 일기를 읽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어떤 이가 그랬다.
그녀, 그녀의 글, 그녀의 일기를 좋아하는 것은 오케이지만
그것을 내가 '살아낼'필요는 없는거라고.
나는 웃음을 털어내며
그녀와 그녀의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를 믿지는 않으니 괜한 걱정 말라고 했더랬다.


피아노를 치면서
fortissimo보다 오히려 pianissimo부분에서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새삼 느꼈다.
음악을 들을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리는
가장 작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부분.
  연주자들은 pianissimo를 표현할 때 자연스럽게 등을 굽히고
건반에 가장 가까이 가게 된다.
어렵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순간,
누구의 눈에 띄지 않아도 좋으니
피아니시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전 읽은 Hélène Grimaud의 책에서 자주 나오던 문장,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를"
를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어떤 그림, 색이 좋고
어떤 음악, 곡이 좋은 것을 넘어서
색이 되고
 곡이 되어버려 
그대로 살아내고 싶었던 것도 관련이 있을터.  


Virginia Woolf의 일기를, 
혹은 다른 어떤 책이라도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살아낼' 수도,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어떤 장르든, 어떤 부분이 진심으로 좋고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조각조각 오려내어
그대로 살아보는 것을 연습해봄직도 좋은 것 같다.
생각과 실천, 현실과 이상, 말과 행동의 간극을 좁히는 연습.
나에게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것들에 생기와 삶을 불어넣는 연습.


예를 들어 요전날 어떤 뻔한 의도를 가지고
"I have an idea about you."
라고 말하는 어떤이에게
"I have an idea about your having an idea about me."
라고 대답한 것은 전혀 피아니시모가 아니었다.
차라리 무슨 말을 해야만 했다면
"Who doesn't?"
라고 하는게 mezzo piano까지라도 갔을 텐데.
질세라 욱하는 이 성질이 문제다.
꾸욱-
하고 2분 쉽표를 연주하지 못하고.




음. 오늘은.
좀 이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 돌면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들어오면
또 어떤 Moderato 템포의 
꽤 마음에 드는 곡이 될 듯 하다.







7.01.2011

Ellipsis

Vilhelm Hammershoi



오전에
전혀 뜻밖의 사람과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교감 같은 것을 나누었다.
내용 자체는 
매우 당황스럽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야기하는 도중 우리는 둘다
매우 따사한 빛같은 것을 보았거나
날듯 말듯 살랑댄 향기 같은 것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자칫 그녀가 중간에 말을 끊고
주제를 홱 바꿀 까 조바심을 내며 
잡아채는 식의 쉽고 빠른 '네', '그렇군요'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주제와 내용을 내게 털어놓는데에서
당황하지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대신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용하고 사뿐하게 그 마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관심과 존중의 표시는
이따금씩 
가장 강렬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말줄임표를 천천히 찍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났든
삶은 계속 살아지는 것이기에.
아직 결말도 없는 
이 당황스럽고 아프고 절망하고 마비되고
그러나 어느날에는 자신도 믿기지 않게, 
다시 서서히 설레며 뛰고 있는 심장,
약간의 망각, 
제 힘이 아닌 용서, 화해.
이 모든 과정이 참 눈부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조용한 놀람과 기쁨의 연속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어렴풋이 경험했다고 할까.


우리는 대화를 하다가 중간에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영감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했다.
도저히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매개로
습관적인 일상속에서 쉽게 잊혀지고 마는
영원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
끊임없이 창의적이고 싶어하는 정신에
물을 주고 영양을 공급하는 아름다운 음악, 미술, 책, 건축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이 정신 사나운 여자의 집중을 오롯이 백퍼센트 
담아간 그 대화의 시작이
상대의 나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을 바탕으로 열렸다는 가정에서,
아직도 뛰고 있는 선홍색의 진실이 던져졌을때 
그것을 꾸미지 않은 눈으로 목격하고 
위선 없이, 공감과 위로와 희망을 모두 포함한 부드러운 침묵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느 예기치 않은 때에 그것이 들려진다해도
전해진 그 믿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책임감 비스무리한 '기대' 같은 것을
나는 얼마나 열심히 피해다녔던가!)




왠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습관적으로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어대는 할머니를 데리고 산다는 것 같다는 
이 시건방진 자아.
얼마나 덜 경험하고
얼마나 덜 찾고
얼마나 덜 살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