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슈만의 콘체르토와 쇼팽 발라드 4번을 치다가
한달도 더 전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Virginia Woolf의 일기를 읽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어떤 이가 그랬다.
그녀, 그녀의 글, 그녀의 일기를 좋아하는 것은 오케이지만
그것을 내가 '살아낼'필요는 없는거라고.
나는 웃음을 털어내며
그녀와 그녀의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를 믿지는 않으니 괜한 걱정 말라고 했더랬다.
피아노를 치면서
fortissimo보다 오히려 pianissimo부분에서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새삼 느꼈다.
음악을 들을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리는
가장 작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부분.
연주자들은 pianissimo를 표현할 때 자연스럽게 등을 굽히고
건반에 가장 가까이 가게 된다.
어렵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순간,
누구의 눈에 띄지 않아도 좋으니
피아니시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전 읽은 Hélène Grimaud의 책에서 자주 나오던 문장,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를"
를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어떤 그림, 색이 좋고
어떤 음악, 곡이 좋은 것을 넘어서
색이 되고
곡이 되어버려
그대로 살아내고 싶었던 것도 관련이 있을터.
Virginia Woolf의 일기를,
혹은 다른 어떤 책이라도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살아낼' 수도,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어떤 장르든, 어떤 부분이 진심으로 좋고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조각조각 오려내어
그대로 살아보는 것을 연습해봄직도 좋은 것 같다.
생각과 실천, 현실과 이상, 말과 행동의 간극을 좁히는 연습.
나에게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것들에 생기와 삶을 불어넣는 연습.
예를 들어 요전날 어떤 뻔한 의도를 가지고
"I have an idea about you."
라고 말하는 어떤이에게
"I have an idea about your having an idea about me."
라고 대답한 것은 전혀 피아니시모가 아니었다.
차라리 무슨 말을 해야만 했다면
"Who doesn't?"
라고 하는게 mezzo piano까지라도 갔을 텐데.
질세라 욱하는 이 성질이 문제다.
꾸욱-
하고 2분 쉽표를 연주하지 못하고.
꾸욱-
하고 2분 쉽표를 연주하지 못하고.
음. 오늘은.
좀 이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 돌면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들어오면
또 어떤 Moderato 템포의
꽤 마음에 드는 곡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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