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Night Frederick Childe Hassam |
아침에 출근하면서
'내 마음은 호수요'에 근접했던 상태에
투박한 바위를 첨벙하고 던져 더이상 고요하지 않게 한 사람이 있었다.
옆옆 건물 보보스빌딩 관리아저씨.
평소처럼 분당구청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기전
그 건물의 정문과 후문을 통과하려는데
아저씨가 뒤에서
"아가씨!"
하고 부른다.
"아가씨 맨날 이 길로 다니는데 여기로 다니지 마요!
여기 길 아니야!
건물 밖으로 돌아서 다녀요!"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혹시 잘못 들은게 아닌지
눈을 정지시키고 아저씨를 봤더니
아저씨는 할말을 다했고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이었다는 듯이
이내 내가 서있는 방향에 관심을 끊고
원래 하던 것을 계속 하셨다.
또 한번 상식의 선이 오른쪽으로 기우-뚱 하는 것과
다섯개 쯤의 말풍선이 동시에 머리 뒤로 슉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한 2초간 내가 서있던, '길이 아니라는' 바닥을 멀건히 쳐다보았다.
방금 길이 아니라고 하신 같은 문장에
이것은 길이다라고 먼저 명시하시지 않으셨냐고.
이것은 길이다라고 먼저 명시하시지 않으셨냐고.
열발자국도 안되는 이빌딩 정문과 후문 사이를 제가 드나드는 것이
아저씨를 방해하느냐고
아저씨를 방해하느냐고
아님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방해하냐고.
세탁소와 편의점이 있는 1층은 누구나 사용하는 공공장소가 아니냐고.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법.
생각이 '법'에 이르자 멈칫했다.
내 기준과 상식에 의심이 들고
실제로 그런 법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기억을 빠르게 뒤지는 동안
법을 전공했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 둘씩 지나갔다.
기억의 끝에 이르도록 걸러져 나온 이름들은
모두 아는 척하기에는 이제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거나
전화 번호를 모르거나
뻔뻔하게 몇 년 만에 전화하는 구실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
아니면.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에서 몇 개 단어만 좀 두드리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구별될텐데.
그가 극단적인 것인지 내가 너무 편의만 추구하는
무른 인간인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텐데.
내용을 출력해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다음에 또 아저씨가 부르면
보란듯이...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다음에 또 아저씨가 부르면
보란듯이...
정확히 어디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모르게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합리적으로 자기 것은 챙길 줄 아는 여자.
아닌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요목조목 따지고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말하는 여자.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여자.
그런 모든 여자들이 실없고 피곤해졌다.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이 그렇듯
맞고 틀리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정의의 구현만으로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어낸 자유와 평등은 어쩐지 차갑기 그지없다.
최악이라고 해봤자 기껏 1분 정도 돌아 걸어가면 되는 일가지고
법을 기준으로 상식을 구분할 정도로
시시콜콜해질거 뭐 있나.
(그러면서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글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과장된 표현이다.)
가장 좋았을 뻔 했던 것은
마치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정도의 험블한 마음으로
그 건물을 통해서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매일 아침 관리아저씨에게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고
아저씨는 인사를 받아주시면서
내 출근길 1분을 헤아려주시는 버전이다.
이것들 중 아무것도 일어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변하기 어려울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그 불편한 심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역시나 변하기 어려운 내 마음을 이어서 불편하게 하는 대신
그냥 집에서 1분 일찍 나와
통과해 다니던 건물을 돌아서 다닐 듯 하다.
그러면서 이 내용에는
Pat Metheny와 Brad Mehldau의 Make Peace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인양 떡 올려놓는,
이 지칠 줄 모르는 단순함.
그것을 때마다 지적하고 비웃는 예민함.
그래서 앉아만 있어도 피곤한 여자.
딱히 이 여자를 흔들어놓는 바깥 상황같은 것도 없어서
거울 두 개를 맞대어 놓고
그 속에 끝없이 펼쳐진 자신의 피곤한 모습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도 역시.
과장되었다.
들여다보는 것 말고도
위를 올려다보기도 하니까.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