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2011

Ellipsis

Vilhelm Hammershoi



오전에
전혀 뜻밖의 사람과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교감 같은 것을 나누었다.
내용 자체는 
매우 당황스럽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야기하는 도중 우리는 둘다
매우 따사한 빛같은 것을 보았거나
날듯 말듯 살랑댄 향기 같은 것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자칫 그녀가 중간에 말을 끊고
주제를 홱 바꿀 까 조바심을 내며 
잡아채는 식의 쉽고 빠른 '네', '그렇군요'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주제와 내용을 내게 털어놓는데에서
당황하지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대신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용하고 사뿐하게 그 마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관심과 존중의 표시는
이따금씩 
가장 강렬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말줄임표를 천천히 찍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났든
삶은 계속 살아지는 것이기에.
아직 결말도 없는 
이 당황스럽고 아프고 절망하고 마비되고
그러나 어느날에는 자신도 믿기지 않게, 
다시 서서히 설레며 뛰고 있는 심장,
약간의 망각, 
제 힘이 아닌 용서, 화해.
이 모든 과정이 참 눈부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조용한 놀람과 기쁨의 연속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어렴풋이 경험했다고 할까.


우리는 대화를 하다가 중간에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영감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했다.
도저히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매개로
습관적인 일상속에서 쉽게 잊혀지고 마는
영원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
끊임없이 창의적이고 싶어하는 정신에
물을 주고 영양을 공급하는 아름다운 음악, 미술, 책, 건축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이 정신 사나운 여자의 집중을 오롯이 백퍼센트 
담아간 그 대화의 시작이
상대의 나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을 바탕으로 열렸다는 가정에서,
아직도 뛰고 있는 선홍색의 진실이 던져졌을때 
그것을 꾸미지 않은 눈으로 목격하고 
위선 없이, 공감과 위로와 희망을 모두 포함한 부드러운 침묵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느 예기치 않은 때에 그것이 들려진다해도
전해진 그 믿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책임감 비스무리한 '기대' 같은 것을
나는 얼마나 열심히 피해다녔던가!)




왠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습관적으로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어대는 할머니를 데리고 산다는 것 같다는 
이 시건방진 자아.
얼마나 덜 경험하고
얼마나 덜 찾고
얼마나 덜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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