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2012

Flâneur



여행자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 기형도


사무실에 붙박이 가구처럼 쾡하게 앉아있다가 점심 시간에 나가서 기형도의 시들을 몇 개 보았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았으나 그대로 팔을 베고 잠이 들어버렸다. 이 시 외에 '흔해빠진 독서'와 '추억에 대한 경멸'이라는 제목의 시도 내 맘을 질척하게 잘 읽는다.

이런 시에는 눈길도 안 준 사람처럼 귀가길에는 발랄하게 저녁거리를 사고 명랑하게 칼도마를 통통 울리며 야채를 썬다. 이렇게 잘해줘도 저녁을 먹고 나면 내 몸은 이내 나를 배신하고 침대에 가 털썩 누워 쿨쿨 잠들어버린다. 자꾸 가구 취급을 하니 기필코 가구가 되어버리고 말겠다는 듯 점점 삐딱선을 타는가. 소위 말하는 '정상궤도'. 12년 개근, 뭐 그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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