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stantin Somov |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떤 굳은 체념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의식의 연속과 인식에의 놀이에 잠식당해서는 안된다. 가장 낭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지독한 집착의 대상이 되어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이면 또 간단하게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좀 재밌었다. 동시에 그 원류를 알 수 없는 배짱이 좀 무섭기도 하다.
생에 대한 애착의 문제. 얼마전 잠실 근처에서 나는 그것을 의지라고 표현했었다. 애착과 의지의 관계. 아무래도 의지만 가지고는 끝까지 버틸 수 없을 지 모른다. 특히 내 의지가 약한 것은 이제 지겨울만한 하다. 애착은 의지를 포함하는 동시에 의지를 생성시키기도 한다. 나는 더 살고 싶다와 나는 더 살고 싶어야 한다의 차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그게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설사 그런 게 있어서 오더라도 오고나면 시시해지는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싶다.
자신있게 센티멘틀할 수 있기에는 이미 남의 의식이 내 디폴트적인 의식 안에 많이 섞여 있고, 또 포기할 건 깨끗하지 않게지만 어느정도 포기할 줄 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희망은 이 세계안에 있지 않다. 유명세도, 지식도 적당한 선을 지나치면, 특히 방향을 잃게 되면 평생을 헤매고 허우적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채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영원을 갈구하는 것 만큼 지속적인 훈련이 가능하게 하는 아이디어도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영원히 살기 위해서 이 찰나같다지만 그렇다고 잘 끝나지지도 않는 것 같은 이것을 착실하게 살아내는 것. 푸코의 어떤 힘의 지배 논리로 설명했을 법한 상벌의 개념을 나는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보상을 갈구하며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적 한계라기보다는 철저히 이기적이며 부자유한 개인의 사고, 인식, 감각을 넘어서게 할 수 있는 축복된 도구, 같은 것으로 본다. 자기 파괴적으로까지 자신을 비웃고 조소하면서 역설적으로, 점점 사라지지도 죽어지지도 않는, 알아볼 수 없는, 내 앞의 생을 사는 것.
유머 감각과 웃을 줄 아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던 일어나지 않던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상관없을 수 있게 되는 것.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알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기만 하면 나는 괜찮다. 이런 인식이 지배적일 때는 나는 정말 괜찮지만 복되게도, 뭐든 잘 까먹고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을 해낼 때도 있고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도 있으니, 정말이지 똑같고 싶어도 매 순간이 같아질 수 없는 놀라움이 있다. 여기 지금 이곳에.
본래 순도 백퍼센트의 열정과 사랑을 그만큼 동경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무지함에서 오는 막연한 행복감인 것도 같다면 이것은 너무 시니컬하게 들릴까. 어제 읽다 잠든 전혜린의 수필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생활의 서서한 파괴작용과 둘만의 권태에 의해서 죽이느냐 또는 사랑을 지닌 채 죽느냐의 양자 택일 밖에는 남겨지지 않는다." 내 인식도 기본적으로, 지상에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이것은 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상의 것이 아닌 어떤 힘이, 의식이, 존재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태초부터 존재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내가 사랑, 참된 사랑, 영원히 살아있는 사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자체가 무리이다. 있는 것에 말이 없는 경우는 더러 있다고 생각하나, 없는 것에 말이 붙어있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러니 사랑도 영원도 거짓말이 아니고 나는 결국 모순을 안은 이상주의자다.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만큼 항상 간단하지가 않다. 모든 것은 허용되어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모든 일을 벌일 수 있고 직접 벌이지 않아도 그런 것들이 그냥 어찌어찌 일어날 수 있음에,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 모든 것은 허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의, 신을 믿는 이들보다 더 굳건한 믿음은 어떻게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잔인함이, 모든 종류의 위선이, 부정의가 있을 수 있도록 허용되는가'의 문제의 논리의 결여에 철처히 매달려 있다. 자유는. 자유는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다는 그 자체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선하지는 않다는 것. 책임과 의무를 넘어 스스로 궁극의 선을 원하고 선택하게 될 때 자유의 참된 의미가 가장 가깝게 실현된다고 본다. 그러니 자유의 실현은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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