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2012

two things

The Child's Bath
Mary Cassatt


엄마는 나를 슬프게 하지마세요. 엄마가 해다준 반찬을 남기면 나는 슬퍼요. 열심히 먹어도 그 전에 시들고 마르면 나는 슬퍼요. 말을 곧이 곧대로만 성실하게 알아들은지 오십 구년. "그냥 버려. 그런게 왜 슬퍼". 엄마 나는 그런게 막 슬퍼. 쓸데없이 많이 배웠거든. 넘치는 건 그런 식이에요. 어머니 날씨가 더우니 여름에는 밭에 가지말아요. 엄마가 밭에 가면 나는 속상해. "안가. 안가." 여기 저기 안해도 되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요. 바빠도, 급해도 안되기야. 내가 문자로 엄마를 불러도 오랫동안 답이 없고 한참 있다 눈을 잔뜩 찡그리고 오타작렬, "뭐긒한일이써" 이렇게 답이오면 내 마음은 무너져내려요. 엄마. 그냥 불러봤어요. 심심한건 아니에요.


되려 부드러움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왠만하면 당황스럽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기초로 한, 눈치 못챌 무관심으로 지내다보면 어느 샌가 물렁하지도, 딱딱하지도, 아무 느낌도 없이 감쪽같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을까, 이런 의지적인 무관심에서 비롯된 무관심의 습관화는 얼굴들이 어색하게나마 다시 웃게되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뭐가뭔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에 살았던 본인이 참 믿기 힘들 정도로 멍청하고 바보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그냥 기억의 조장. 시간의 차이가 일으키는 특수한 효과. 살아온 동안에는, 그 어느 창피하고 모욕적이고 부끄러운 순간에도 나는 결국엔 오롯이 나였으며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여하간, 매순간, 결정같지 않은 결정도, 무시무시한 선택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없어지고 다시 웃게된다,라.. 그리고 다시 부드러웁시다? 쯥. 오늘도 그냥 막 갖다 붙이면 말이되는 줄 안다. 하여간 지나간 것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괜찮을 수 있는 것이 좋겠다. 본인에게 무진장 너그럽자는 것보다, 핏줄을 타고 올라와 입가를 물고 늘어질 노예근성은 정말이지 누구도 원하지 않으니까. 괜찮을 수 있는 원리로는 이미 치뤄진 댓가, 이미 주어진 용서, 구원. 이것들을 신뢰함. 괜찮아질 수 있는 과정은 개인마다 가지각색.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