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2012

Randomly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 강원도 시골에 데려갈 때마다, 이만한 발암물질 없다고 아홉시 뉴스에 빵빵 터졌던 슬레이트판에, 닭고기를 구워먹였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하셨다. 정말 얼마나 무식한 엄마였냐고 글썽글썽 미안해하셨지만 나는 도통 기억에 없는 일이다. 동생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지 잠자코 있더랬다. 그 초등학교 시절 즈음해서 기억이 잘도 나는 것은 내가 아빠 서재에서 오천원짜리를 몇 장이나 훔쳐 동네 오락실 동전교환기에 넙죽넙죽 잘도 갖다 바치던 날들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아직 입도 뻥끗하지 않은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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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 미쳐가는 거라면 침착하고 차분하게 미쳐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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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볼라뇨의 The Savage Detectives는 매우 절박하다. 아무것도 꾸밀 겨를이 없는 절박함. 펄떡펄떡 뛰는 것들이 그대로 날 것인 채 종이에 옮겨박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흙먼지 냄새와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 냄새, 씻지 않는 것이 익숙해진 인간의 살 냄새. 내리쬐고 내리쬐고 내리쬐는 태양. 어딘가가 끈적끈적 Marquez의 작품과 비슷하게 연상되는 구석이 있지 않아? 하는 바보같으면서도 은근 잘난척하는 질문은 내가 얼마나 읽은 게 없는지를 증명한다. (실제로 라틴 아메리칸 작가들은 그 둘 말고 읽은 게 없는 것 같다.) Bolaño는 Marquez를 '쳐'주지 않았다니깐. 어쨌든 편리하게 지형적으로 묶고 마려는 습관적 편견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그것만도 아니다. 작품의 지형적 셋팅이 적어도 나한텐 꽤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으므로 두 사람을 완전히 떼어 놓지 않아도 된다.  

여튼, 절박하다. 타협이란게 없다. 매사에 죽을듯 하다. 죽을듯이 헤매고 죽을듯이 방황하고 죽을듯이 대화하고 죽을듯이 느끼고 죽을듯이 정처없고 죽을듯이 반항하고 죽을듯이 시 쓰고 죽을듯이 사랑하고 죽을듯이 사랑을 만들고 죽을듯이 술 마시고 죽을듯이 읽고 죽을듯이 담배피고 죽을듯이 찾고 죽을듯이 믿는다. 그러다가 미치기도 하고 깡 말라버리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다 죽기도 한다. 아, 완전 그 반대일수도 있겠다. 매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산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헤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방황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정처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반항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 쓰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랑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랑을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술 마시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읽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담배피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찾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믿는다 (흠. 마지막 이건 쫌,).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건가? 

음. 쓰고보니 또. 두 개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한쪽이 선행되어야 다른 한쪽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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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을 이렇게 헐겁게 끄집어내어 기껏 엉성한 몇 문장으로 박아놓는 것도 너무 귀찮다. 그저 자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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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나는 엊그제 30년 전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얽힌 This American Life 에피소드를 들었다. 개인의 삶은 참 어이가 없을 정도로 끈질기고 다수의 삶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끝난다. 그 매 순간이 기적과 같은 개인의 인생의 무게와 가치를 본인만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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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몇 년 째 안보이고 있는 내 줄무늬 여름 수트가 갑자기 생각났다. 또 어느 동네 세탁소에 맡겨놓고 잊어버려 영원히 잃어버렸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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