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2012

garden-variety reading

Reading Woman with Parasol
Henri Matisse


오전에 정자동에 갔다가 오는 길에 미용실이 눈에 띄길래 쑥 들어가, "머리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 했다. 날도 머리도 너무 더웠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요렇게 조렇게 이렇게? 아니면 이건 어때요? 나는 계속 심각한 표정으로 갸우뚱하다가, 아놔- 이 손님 참-, 소리까지 듣고, 그냥 해주시는 분이 원하시는대로 머리에 물을 들이고 나왔다. 짧은 커트머리는 끝까지 안해주시겠다는데 그래서 나는 해줄 때까지 계속 같은 미용실에 가서 다른 머리를 하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백화점을 통과해 나오다가 만만찮은 충동구매를 두 개나 하고선 집에와 머리를 쥐어박았다.

세종에서 하는 무슨 하프 독주회에 마드모아젤과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그녀는 일에 심취해, 나는 침대에 부착되어 없던 일로 하기로 하고 그녀의 귀가길에 다시 정자동에 가서 깐부치킨을 먹었다. 마드모아젤에게는 내일 저녁 흥미로운 일이 펼쳐질 예정이다. 기념으로 그녀의 몫은 거의 내주지 않고 닭한마리를 나 혼자 다 먹었다. 배부르게 먹으니 졸려서, 언니 졸려요, 갈래요, 했더니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지적하셨다. 막 하던 것을 어느 순간 탁 내려놓고, 갈래요, 언니는 계속 언니 할 거 해요, 하고 가버리는게. 내가 그러는구나. 괜찮은데?  

졸린 눈을 꿈뻑꿈뻑하며 파크뷰를 지나 집에 걸어왔다. 여름 밤 공기가 미적지근했다. 

토요일이고 해서 며칠 전 읽었던 기형도의, 휴일의 독서에 관한 시를 다시 들춰보았다.


흔해빠진 독서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 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달라고

-기형도


남의 말을 쓰면 judgmental 하다그러고 자기 말을 쓰면 self-indulgent 하다그러니 비평하는 사람들의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책잡히기 싫어 아무것도 안쓰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어쩌고 저쩌고 쓰려고 했으나

아 나 지금 너무 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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